화해의 기술
소리판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추임새다. 추임새는 ‘추다’, ‘추어준다’라는 동사와 ‘새’라는 불완전 명사의 합성어로써 청중의 분위기나 감흥을 자극하여 소리판을 어울리게 하는 감탄사로 쓰인다. ‘좋다, 좋지, 으이, 얼씨구, 허이, 그렇지, 아먼, 얼쑤, 흥, 어디, 잘한다, 명창이다’ 등의 추임새는 창자의 흥을 돋우어 소리를 잘 하도록 돕는다. 소리판에서만 추임새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한 마당을 펼쳐놓아야 할 때 ‘어머... 그래서... 아하...’ 또한 ‘고맙다, 감사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의 따스한 말이 추임새로 들어가면 대화가 훈훈해진다.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 잘 듣고 있으며, 동감하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표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을 돋우는 추임새나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말들의 사용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이나 상대방의 의견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말을 하는 것을 오히려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다가는 바보 취급을 받기가 일쑤이니 추임새를 넣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먼저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하다, 잘 지내보자, 화해하자는 표현을 하면 지는 것이 될까 봐, 왠지 약하게 보이거나 낮게 보이게 될까 봐, 그러한 말을 꺼내기조차 두려워한다. 모든 이웃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경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누구보다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해야만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는 각박한 세대다. 그래서 서로 돕고, 서로 어우러지는 일들에 대해서 냉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아이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미 많은 시간을 살아온 어른들보다 현재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 앞으로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도토리가 유치원 다닐 때의 어느 날 오후가 생각난다. 그 전날 저녁에 도토리와 아빠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인지 서로 약간 삐쳐있는 상태였다. 다음 날 아침에도 도토리의 아빠는 딸에게 다정한 인사 없이 출근을 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갈등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마도 아주 사소한 일로 아이가 경쟁을 시도했다거나, 아니면 교육적 차원에서 어른의 의도된 행동을 의미할 것이다. 아빠의 의도를 알 리 없는 도토리는 무척 서운했나 보다. 어린 마음에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저녁 시간쯤 되니까 그래도 아빠가 기다려지는지 스스로 전화를 건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고 출근한 아빠에게 어린 딸이 먼저 전화를 걸어 화해를 요청한 것이다. 도토리의 전화 첫마디가 ‘아빠, 이제부터는 우리 사랑하자. 응?’이었다. 이런 사랑스러운 요청을 받은 아빠의 마음이 어찌 안 풀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는 지금 잘잘못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잘 못했어!’ 혹은 ‘아빠 왜 그랬어?’가 아닌 그저 아빠와 잘 지내고 싶다는 아이의 열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를 향한 어린아이의 순전한 사랑이며 전폭적 신뢰의 표현이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의 이 훌륭한 화해의 기술이 너무 완벽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도토리의 화해하는 기술처럼, 내가 먼저 화해의 말, 추임새의 말을 넣어주면 인생이, 주변이, 아니 내 삶이 훨씬 더 여유로워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의 회복과 더불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화해의 말, 용서의 말, 추임새의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한번 내보아야겠다. 이러한 언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CHARMBooks&Trace > e<도토리선생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e도토리선생님(10) - 손가락 계산기 (0) | 2007.08.28 |
|---|---|
| e도토리선생님(9) - 휴... 다행이야... (0) | 2007.08.11 |
| e도토리선생님(7) - 장애인의 날에 대한 단상 (0) | 2006.06.18 |
| e도토리선생님(6) -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0) | 2006.06.12 |
| e도토리선생님(5) - 어른이 왜 그거를 모를까? (0) | 2006.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