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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감에 대하여(3)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드리는 감사

truehjh 2025. 10. 9. 11:28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3)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드리는 감사

 

긴 연휴가 끝나기 전에, 나이 들어감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을 만나면 수다라는 명목으로 늙음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곤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지금처럼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글로 풀어놓곤 한다. 나의 수다와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고백보다 걱정과 염려, 자기변명과 비하, 원망과 투정, 위선과 가당치 않은 욕망 같은 것들이 다분히 담겨있다. 늙음에 대한 나의 낭설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내가 배설해 놓은 수많은 말과 글은 늙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고백이다.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은 적이 있다. 부제가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였다. 저자는 초판 서문에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얼 뜻하는 지 이 글에서 밝혀보려 한다.’라고 썼다. 나에게는 다소 난해한 개념의 전개였지만, 생각할 거리는 아주 많았다.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으나, 내가 잘 나이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나이 들어가는 것일까? 저자의 주장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내 생각이지만, 아니 오히려 역설적인 말 같지만,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감사를 찾을 수 있다면 잘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늙음에 대한 약간 아픈 저항과 약간 슬픈 체념 사이 그 어디쯤에서 감사를 피워낼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뭔가 크게 원하거나 주장하거나 고집하고 싶은 신념도 이제는 없으니 나이 들어감에 순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루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이나 후회도 별로 없으니 단념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지금 여기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은 이집트왕 바로 앞에 서서 험악한 삶이었다라고 말했고, 시인 천상병은 귀천에서 아름다웠다라고 했는데, 나의 고백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아 고뇌했던 청년 시절, 나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찾아 헤매던 장년 시절, 답을 찾지 못하여 돌아서고야 만 나의 노년 시절, 어느 순간 하나라도 버릴 수 없는 내 삶의 여정이므로 험악한 삶이었지만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은 순례길 위에서는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어릴 적부터 암송하던 성구 범사에 감사하라를 실천하는 삶이 될 터인데 말이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젊었을 때는 뭔가 이루어달라는 기도가 절절했다면, 나이 들어서는 오히려 이루지 못함에 대하여 감사기도 드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의 생에서 이루고 가진 것만이 감사가 아니라 이루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마저 감사할 수 있다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모든 것이 쇠퇴하고 소멸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너무 큰 꿈을 꾸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꿈을 꾼다. 올무에서 벗어나는 새같이 자유롭게!

 

- 2025.10.09. 페북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