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맞아? : 나를 위한 변명(2)
‘약사 맞아?’라는 지인의 질문에 대한 변명을 다시 이어간다.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세 번째 약국을 개업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나를 위해 돈을 벌기로 한 것이다. 목표가 단순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틈틈이 한약학, 양병학, 양재, 미술 등을 배우고 공부하며 공허함을 채워 나갔다. 목표했던 경제력도 생겼다. 약국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더 구입하여 또 다른 삶의 기틀을 마련해 놓았다. 이 시기에 내 삶의 기준과 모범이 되어주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신 후,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 친구와 극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녀는 내가 가려던 의과대학에 들어가, 내가 하고 싶었던 정신과 의사가 되어, 내가 바라던 현모양처의 삶을 살고 있었다. 26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장애와 연결되지 않은 다른 세상으로 용감하게 나가라고 나를 부추겼다. 그녀의 격려에 힘입어 나는 장애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며, 다시 미국으로 갔다. 서울 집을 팔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동생에게 사업자금으로 빌려주고, 일부는 남겨서 미국 생활에 대비할 예정이었다. 이국땅에서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여기저기로 부딪히며 헤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 친구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천둥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끝 모르게 내달리던 반항의 길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회심의 순간이었다. 죽음에 비하면 장애로 인해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는 원망은 우스꽝스러운 유아기적 반항이었음을 인정했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대책 없이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내가 그토록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장애라는 굴레에 대하여 깊이 알아볼 기회를 얻었다. 사회복지대학원 교수의 조언으로 장애인복지학을 공부하고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특별한 경제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후 준비로 투자했던 출판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출판일에 적극 관여하게 되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기던 출판 관련 일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기록과 편집이라는 작업을 만났고, 그 일은 전자책 제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출판 관련 일은 돈을 버는 도구가 될 수는 없었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지고 있던 돈을 내어놓아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준비한 노후 생활 계획에 지장을 초래했고, 적게 벌면 적게 쓰고 살겠다는 생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쩌면 그러한 경제관념이 이 지경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활발한 경제활동 없이도 남동생 집에서 엄마와 같이 살았으므로 크게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 약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노후 삶이 점점 불투명해져서 의정부 집을 팔고 영태리에 집을 마련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남동생 집에서 독립했다. 계속 같이 살아야 할 명분도 사라졌고 미적거리다가는 의존된 상태를 벗어날 용기가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고 남자 형제의 그늘막에서 완전히 벗어날 배짱은 없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싱글로 살아가는 여자에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남동생의 보호막 안에서 살 수 있는 영태리 집으로 이사한 후, 독거노인의 정체성으로 은둔하여 살았다. 글을 쓰고, 전자책을 만들고, 남동생 가족이나 형제자매들과 함께 국내 및 국외 여행을 다니며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곤 했다.
부요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잘 지냈다. 하지만 60대를 마무리하면서 더 약해져가는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늙어가는 동생에게 기대어 사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서 자유로울 나이가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의존적인 삶을 살아도 되는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타인의 도움 없이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늙기 전에, 내 몸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산을 정리했고, ‘약사 맞아?’라고 물어본 그 친구의 말대로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지금 나는, 남은 삶을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대비책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사한 작은 아파트에서의 생활도 그런대로 괜찮다. 단지 마음속이 가끔 들끓는 것이 문제다. 내 삶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으며 감사하는데도, 가끔씩 내 마음을 흔드는 의문이 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진 내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겪고 있는 갈등 때문이다. 부끄럽지 않은데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은 이 상황이 매우 난감하다. 경제에 대한 내 기준은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경제에 대한 나의 신념이 확고하지 못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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