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카이로스의 순간을 기대해도 될까
외로운 숫자 하나와 외로운 숫자 하나가 만나면 숫자 11이 된다. 둘이 되어서도 평행선을 달리는 숫자 11, 그리고 오늘은 11월 11일이다. 내가 지금 아이들처럼 숫자 놀이를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젊었을 때 지독하게 앓던 11월의 공허한 기억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고 서투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중 11월에 비유되는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삭막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서, 짧은 것 같으면서 긴 내 삶을 돌아본다. 지나온 내 인생길은 노숙의 길이 아니고 순례의 길이었다. 내가 노숙자가 아니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 마음이 여기저기로 흔들리거나 부유하지 않고 늘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었다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해 주시는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순례길 위를 걷는 동안에 남길만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내 삶을 터치해 주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 잊을 수 없는 순간의 감격이 나의 삶을 이끌어온 힘이었다.
그런데 그 감동이 점점 아스라해져 가고 있다. 나이가 들었더라도 그 기억의 감격이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감격으로 남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종착역에 가까이 다다르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어 너무 아쉽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그 무엇인가가 늙어가는 나를 흔든다.
꿈도 사랑도 욕망도 버리고 수퍼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노라고 다짐했는데 거기에 희망 하나를 살짝 얹어도 될까? 또다시 꿈을 꾸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욕망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여전히 카이로스의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도 될까? 격하게 마음을 흔드는 어느 순간을 맛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도 될까? 스스로 드러내다가 스스로 숨는 소망의 순간에 내가 과연 다가설 수 있을까? 살아있음에 대한 격한 감격의 순간을 또다시 마주한다면 나는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Here & Now! 여기가 이 세상 나그넷길을 가는 순례자의 마지막 거처가 되기를 기도하면서도, 지금이 나에겐 최선의 순간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는 작은 불씨 같은 기대감으로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나를 흔드는 기대가 없다면 마음이 평온할 텐데, 작은 기대가 생기니 마음의 평화가 깨지면서 조급해진다. 노후 삶의 진짜 적은 외로움이 아니고 기대감이다. 은근하게 피어오르려는 소망에 대한 기대가 외로움에서 비롯된 노욕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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