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표정도 간소화되는가 보다
지난주에는 겨자씨 송년회에 다녀왔다. 이사 와서 두 번째 서울 나들이였다. GTX를 타고 나와 대곡역에서 용문으로 가는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했다.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어서 붐비지는 않았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노인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좌석은 60~80대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니 모두가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분노가 가득한 얼굴들이라고나 할까. 나이 들면 표정도 한 가지로 간소화되는가보다.
나이 든 얼굴에서는 그런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내 눈에는 모두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얼굴 근육의 노화로 피부가 늘어져서 저절로 생긴 표정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내 얼굴도 저렇게 화난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평소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거나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편안한 웃음을 가진 표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순간순간 노력해야겠다, 억지로라도 노력해야겠다’라고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도착역에 이르기 전에 이미 후배의 차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신세 지지 않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세상살이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타인의 배려와 도움을 받고 살 수밖에 없는데, 나 혼자서 자존심 챙기며 예민하게 굴 수가 없는 노릇이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사는 일상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러한 여유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생기는 것 같아서 언제나 망설여진다.
이번 겨자씨 송년회에서는 매년 진행하던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을 하지 않기로 했다. 소소한 재미는 있지만 선물 보따리를 들고 다니기가 불편해서였다.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때 작은 물건이라도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만 가지고 갔다. 회원 중 한 명이 집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왔고, 언제나 그랬듯이 겨자씨 싸롱의 안주인은 안락한 장소와 회원들의 편의와 맛 좋은 커피를 제공하여 멋진 송년 모임이 되도록 애써주었다. 그러나 호흡기를 끼고 있어야 하는 그녀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어 예전같이 수다 삼매경에 빠질 수는 없었다.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주제 없는 수다를 펼치다가, 송년 모임이니만큼 이야깃거리를 하나 꺼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 모두 죽음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나이이기에 언제부터인가 겨자씨와 나누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이라고 하는 사람, 죽으면 끝이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 사람, 믿음 안에서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나는 ‘다정하고 따뜻한 인간이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구동성으로 지금도 그렇단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지나치듯 속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어쩌면 전철에서 만난 화난 표정의 얼굴들이 생각나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 들었다고 단순하게 화난 표정이나 무심한 표정만 짓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늙을수록 최소화하고 단순화하며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웃음의 여유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다정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 마음이 먼저 다정하고 따뜻해야 한다. 나는, 지금, 다정하고 따뜻한 만남과 대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노년의 시기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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