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 In His Hand/Minimal Life(2025~ )

실버시대 - 이사한지 1년

truehjh 2026. 8. 28. 21:26

 

이사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사하기 전에는 이사 준비에 몰두하느라고 희망적으로 살았고, 이사한 후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활기차게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로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정해진 것은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서 더 무료함과 허전함 속에서 헤매는 것 같다. 이사하고 사계절을 지내는 동안 집 주변의 환경이라든지, 집의 활용 방법이라든지,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느라고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써서 생긴 현상이라고 해야겠다.

 

70여 년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변화와 전환점이 되는 선택이 있었다. 소아마비 수술을 선택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내 짐을 들고 혼자 걸을 수 있는 독립성을 확보했다. 의대 입학 거절로 타의에 의해 약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인생의 꺾임을 일찍 경험했다. 약국 대신 기독교교육학의 선택은 새로움을 향한 도전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고, 장애인 천국이라는 곳 미국으로의 탈출은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돌아와서 장애인복지 공부와 장애인인권운동의 현장에 있다가 결국은 소명을 찾아 출판과 편집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주거 독립을 선택함으로써 나로 살기를 시작했다.

 

기록과 편집은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주는 취미가 되었고, 나로 살기의 완성을 찾아 지금 여기로 다시 이사를 선택했다. 지난 1년간 가진 것을 버리고 비우며 미니멀라이프가 가능한 삶을 살았다. 버리는 것의 시작은 이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전부터 희망과 욕망과 꿈 같은 것들을 버리는 훈련을 해 왔다. 삶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뭔가를 버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남겨야 할는지의 선택도 쉽지 않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어서 지난 과거만 돌아보고 있는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버리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 미처 마무리 짖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버리고 비우려는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하고, 앞으로 몇 년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에 몰두해야겠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나이가 평균적으로 75세 전후라고 하니, 그때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나 희망 비스무리한 것들일 것이다. 스스로 포기했던 것들, 미루어 놓았던 것들, 의미 없다고 놓아버리려 했던 몇 가지 일들이 있지 않은가. 문득 아버지의 나비가 떠오른다. 부모님의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희망했던 적이 있는데 내 능력의 부족이라고 거두어들였었다. 책을 만들겠다는 열정과 의미를 놓아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노인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나약함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다. 어딘가에 있을 의미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의미 안에 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려면 앞으로 다가오는 3~4년을 어떻게 전개해 갈 것인지의 방향을 정하고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 열정을 붙잡아 미완성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할 일이 없다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투정할 때가 아니다. 미루어두었던 것들을 찾아 마무리해야 할 때다.

 

지금 이 시기가 젊은 시절처럼 인생을 크게 흔드는 전환점이나 선택의 기로는 아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이 시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곳에서 두 번째로 맞이할 아름다운 계절 가을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 언젠가 봤던 좌판을 깔아놓고 뜨개질에 집중하고 있던 그녀처럼, 보아주는 이 없어도 피고 지는 들꽃처럼, 나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소박한 꿈을 이루어 가는 시간을 살아가고 싶다면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