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어떤 분이 ‘어머, 사모님하고 똑 닮아가시네요’라며 반가워한다.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었다. 나를 보고 엄마 닮았다고 하는 말은, 아마도 얼굴의 윤곽이나 분위기가 닮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내 얼굴 모습이 엄마와 비슷해 간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이전에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주로 듣고 살았기에, 엄마 닮아간다는 말이 낯설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하긴 오래도록 본 친구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들의 어머니 모습과 닮아간다고 느껴진다. 나이 든 모든 딸들은 엄마로 회귀하게 되어 있는가 보다. 나의 엄마 역시 그녀의 어머니를 닮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딸이 있다면 내 모습을 닮아 있을까. 나는 엄마가 아니라서 나를 닮은 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살짝 아쉽다.
나의 엄마는 화장하지 않으셨다. 요즘 말로 하면 생얼로 사셨는데,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버지가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는 엄마가 파마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으셨다. 여인들이 긴 머리를 간수하기가 얼마나 불편한지를 몰라서 그러셨겠지만, 자연스러운 멋이 좋다고 꾸미는 것을 반대하셨다.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니큐어 한 손톱이 너무 멋져 보이던 때가 있었다. 내가 손톱을 기르고 회색으로 매니큐어를 하자 못 본 척하시던 아버지가 참을 수 없으셨는지 ‘그게 뭐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적 멋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왜 모르네?’라고 한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의 영향은 아니지만, 나도 엄마처럼 화장하지 않고 살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의 일이긴 하지만, 엄마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노인이 누워있는 모습이 침대 맞은편 거울에 비췄는데, 그 실체가 바로 나여서 깜짝 놀랐다. 다시 거울 앞에 서 보았다. 여전히 그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엄마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노인의 실루엣이었다. 돋보기를 쓰고 다시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자세하게 드러난 그 모습에서 연륜과 지혜와 용기가 느껴져서 자랑스러워야 할 텐데 자랑스럽기는커녕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거울에 드러난 내 모습을 또다시 확인하는 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여전히 내 머릿속의 나는 노인이 아닌,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그 어느 순간에 멈춰있는가 보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엄마 생각이 자주 난다. 침대 모서리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엄마 생각이 난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깜박 깜빡 잊어버릴 때도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도 그랬다. 조용히 나에게 다가오셔서 ‘한약사, 오늘이 무슨 요일이가?’라고 묻곤 하셨다. 엄마는 나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장성한 자녀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주의 이름을 앞에 두고 누구 애비, 누구 애미로 부르셨다. 아들, 딸, 며느리의 이름을 직접 부르기보다는 아비나 어미의 방언을 호칭으로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누구보다 품격을 중요시하며 사신 엄마는. 그것이 예의범절인 줄 아신 것 같다. 애비 애미가 뭐냐고 내가 엄마를 놀리면, 그렇게 부르는 것이 법도라고 하셨다.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 같은 신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법도라고 설득하곤 했다. 그러나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예외는 있었다. 사위를 부를 때는 두 가지를 사용하셨다. 우리 앞에서는 주로 누구 애비라고 하셨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셨다. 아무래도 종교적으로 예우해야 한다는 신앙심이 작용하고 있어서 자유롭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를 부르실 때도 예외였다. 사실은 예외라고 할 수는 없겠다. 나에게는 누구 애미라고 할만한 누구가 없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결혼하지 않은 큰딸의 이름을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호칭을 발견하지 못하신 것 같다. 뭔가 중요한 것을 묻고 싶으실 때, 아니면 어떤 말을 전해 주고 싶으실 때 정희라는 이름 대신 한약사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정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했다. 엄마에게는 내가 늙었어도 딸인데, 직업을 명시하는 호칭으로 불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약사가 뭐냐고 툴툴대면 엄마는 웃기만 하셨다.
엄마가 살아계실 당시에는 그런 호칭을 사용하시는 이유를 세심하게 따져 묻지 않았다. 엄마의 일탈을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난 후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름은 명성이 아니라 기억됨을 뜻하는 것이라는데, 나를 부를 때에 유독 사회적 호칭을 사용하신 이유는 뭘까. 아기 때부터 부르던 이름으로 나이 든 딸을 부르기가 안타까우셨던 것일까. 궁금하지만, 이제는 엄마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호칭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며 엄마를 회상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달리 부르고 싶지 않다. 엄마라는 호칭은, 아니 엄마라는 이름은 그 어떤 이유로도 포기할 수 없는 이름이다. 나의 엄마도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엄마’를 부르셨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시기 전 입원실에서 지내고 계실 때다. 병원성 섬망 증상이라고는 하지만, 몸이 힘들고 뭔가 다급하니까 ‘엄마, 엄마...’를 중얼거리셨다. 85세의 엄마가 60년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를 애타게 부르신 것이다. 분명히 결혼하시고서는 어머니라고 불렀을 터인데 아이일 때 부르던 호칭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80대의 엄마가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져 가는 무렵 급할 때 입에서 나온 단어가 ‘엄마’였다. 엄마라는 이름은 이렇게 애틋하고 가슴을 울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나에겐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 사람이 없다. 나를 닮았다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 그것이 너무 슬프다. 만약에 나에게 자식이 있었더라면,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 있을까. 나도 다정하게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을까. 상상하는 것조차 부질없다는 것을 안다. 다시 내 엄마의 목소리나 소환해 보아야겠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가 미소를 띠며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호칭, 정희야가 아닌 한약사! 그때는 못마땅했지만, 지금은 그리움으로 남아 이렇게 아련함으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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