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antary&Faction/My Story In His Hand(1955~ )

(014) 은제의원

truehjh 2007. 6. 25. 21:30
여자아이는 2층처럼 보이는 방의 창문을 열고병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혹시 자기가 찾고 있는 남자아이가 그 길로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1965년 1월)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어렵게 학교생활을 이어갔지만, 나는 같은 또래와 공부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락부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나를 도와주던 언니 오빠들이 보고 싶었고, 우리 반 반장이었던 그 남자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나는 겨울 방학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방학이 오면 해방촌에 있는 외가댁 은제의원으로 갈 수 있으니까요. 어렸을 때 우리 4남매는 웬만한 병은 다 그곳 은제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식사 시간입니다. 커다란 방 한쪽 벽면으로는 네모난 식탁이 차려지고, 그 옆으로 커다랗고 둥그런 밥상이 차려집니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꼬마 이모와 외할아버지가 마주하고 함께 식사하는 네모난 자개 밥상 위에는 소고기 반찬이 꼭 올려져 있습니다. 삼촌들과 큰이모와 우리들이 외할머니와 함께 먹는 나무 밥상 위에는 소고기는 없더라도 여러 가지 반찬으로 풍성합니다. 이러한 밥상 풍경이 외할아버지의 독특한 편애로 인한 사회적 질서의 현현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근원적인 욕망이 어우러지는 외가댁의 밥상 문화를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가댁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고, 꼬마 이모와 큰이모의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에 불평할 일이 없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이모는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고,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꼬마 이모는 화투를 같이 하자고 졸랐습니다. 나는 화투를 칠 줄도 몰랐지만, 우리 아버지나 외할아버지 세대는 화투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에게는 금기의 놀이였는데 말입니다. 모자를 접어 쓰고, 다리미로 주름을 잡은 교복 바지를 입고, 헐렁한 책가방을 접어 옆에 끼고 다니셨던 고등학생 삼촌 한 분은 나를 보면 자신의 두 발 위에 내 발을 올려놓고 팔을 잡고 춤을 추곤 했습니다. 나는 매달려 있으면서도 신이 났습니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삼촌들이 계셔서 재미있는 일들과 신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보다 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놀이가 있었는데, 바로 병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이었습니다. 병원은 남산에서 내려오는 비탈길과 연결된 사거리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병원 입구는 돌층계로 올라가야 하고, 살림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반대편에 있습니다. 커다란 대문을 열면 마당 왼편으로 나무들이 서 있고 그 뒤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는데 여름에는 수박이나 참외를 넣어두고 먹기도 했습니다. 그 옆으로는 병원 진료실과 통하는 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삼촌들과 이모들의 방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거기서 놀았습니다.

 

병원으로 직접 들어가려면 돌계단 몇 개를 올라가야 합니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는 진료실과 대기실이 있고, 더 들어가면 주사실과 처치실 등이 있었습니다. 왼쪽으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큰 방이 있습니다. 다 같이 식사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입니다. 밖에서는 2층 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방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사거리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해 겨울 방학, 외가댁에 있는 며칠 동안 내내 할아버지의 큰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원 앞 사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중에 구락부에서 함께 공부하던 언니 오빠들, 특히 반장이었던 그 소년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방 창틀에 기대어 서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하염없이 사거리를 내려다보았던 것입니다. 혹시나 그 아이가 이 거리를 지나간다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얼마나 헛된 기대감이었는지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만나기 위한 나의 간절한 기다림은 방학과 함께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눈썹이 짙은 그 아이의 얼굴이 세월 따라 희미해져 갔고, 나의 순결한 짝사랑은 그렇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미지의 소년을 향한 나의 짝사랑은 내가 가진 장애가 나의 사랑을 간섭할 수 없었던 유일한 사랑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더욱 순결한 짝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