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antary&Faction/My Story In His Hand(1955~ )

(013) 학교 가는 길

truehjh 2007. 6. 20. 21:36
키가 큰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업고키가 작은 남자아이는 책가방 두 개를 들고 뒤따라간다문밖에 나와 있는 꼬마 아이는 언니 오빠들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든다학교 잘 다녀오라고... (1964년 10월)

 

나에게 그림의 꿈을 심어주시던 삼촌이 돌아가신 그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등교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교육계에 계셨던 아버지 친구분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우이동에 있는 우이국민학교로 전학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한 부모님의 헌신은 수량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4학년 2학기 정규과정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학교에 가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학교 다니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낮은 야산을 넘어가야 하고, 도중에 묘지도 몇 개 지나가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합니다. 건강한 다리를 가진 아이들은 모두 걸어 다니는 거리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출근길에 같이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 등에 업혔다가, 걷다가 하면서 버스정류장까지 갑니다. 아버지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는 중학생인 오빠가 나를 업고 갑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남동생은 자기 가방과 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야만 합니다.

 

그렇게 버스정류장까지 가면, 우이동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 됩니다. 그 당시 버스를 타는 것도 어린 나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해야 하고, 진학해야 하고, 세상에 나가 그들과 같은 조건으로 겨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두 정거장 가야 하는 버스 타기는 조금 수월했습니다. 복잡한 시내로 들어가는 노선이 아니고 외각인 우이동으로 나가는 버스였기에 한산했으니까요. 어떤 버스 안내양 언니는 책가방을 들어주고 버스에서 내릴 때 붙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언니는 굳이 버스요금을 돌려주기도 합니다. 안면이 생기면 고맙다는 인사도 하면서 고된 등하굣길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힘들게 운동장에 들어서면, 하얀 자동차가 지나가곤 합니다. 그 자동차가 운동장 끝에 있는 계단 앞에 서고 문이 열리면 멋쟁이 여인이 내립니다. 그 뒤로 여자아이가 따라 내립니다. 그 아이는 다른 반에 있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동급생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나이 또래는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이 아주 많아서, 한 반에 한두 명을 장애인 친구가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늘 예쁜 엄마와 함께 자가용을 타고 등교했습니다. 가방도 다른 사람이 들어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험난했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나오면서 버스를 타지 못할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천히 가도 되니까 별문제는 없지만, 황소눈깔이라고 놀리며 내 걸음을 흉내 내면서 뒤쫓아 오는 아이들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방을 들어주는 착하고 좋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책가방을 들어주고 걸음 보조를 맞춰주는 친구들과 떠들며 집에 돌아오는 길이 힘겹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런 길이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는 막냇동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일어났던 일을 다 이야기해 주고, 새로 배운 것들을 가르쳐 주며, 그날의 힘겨움을 덜어내곤 했습니다. 막냇동생은 집에서 함께 놀 수 있는 친구였으며, 온갖 것을 다 가르쳐줄 수 있는 후배였습니다. 이 기간에는 남자 형제들의 도움을 받고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큰 중학생의 등에 업힌 여자아이와 커다란 책가방 두 개를 낑낑대며 들고 뒤를 졸졸 따라가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문밖에서 손을 흔드는 조그만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열네 살, 열 살, 여덟 살, 다섯 살짜리 4남매의 동화 같은 등굣길 풍경은 4학년 2학기와 5학년 1학기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모두에게 힘겹고 곤혹스러운 상황이기는 했겠지만 말입니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여 울기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다가옵니다. 그때 나를 업고 다녔던 오빠와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따라다녔던 남동생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꼬마 친구가 되어주었던 막냇동생 역시 지금까지도 여전히 든든한 우군입니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형제자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