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일본(1989)

[일본땅을 디디며(1989)] 히로시마

truehjh 2007. 6. 20. 21:36

1989.09.20 - 히로시마


아사히 가와소에서 4시 30분에 기상했다.

오늘은 히로시마행이다.


구르즈미교에서 나온 안내자들은 어제의 노신사들과는 달리 진심이 없어 보이는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왕복 9시간의 긴 버스여행이라는 부담감을 갖고 출발했다.

강이 계속 보이는 창쪽에 앉아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강을 보며 이동했다.

강뿐만 아니라 울창한 숲, 자그만 집들의 정원, 길가에 흔들리는 풀 한포기,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에서 손길이 닿은 듯한 정결함을 보며 난 자꾸 화가 나면서 부러웠다.


히로시마의 원폭기념공원에 도착했다.

원폭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한국희생자 기념비 앞에 모였다.

종이학과 조약돌에 새겨진 이름들.. 원폭... 말없음표 후에는 비둘기가 노닐고...

기념공원에서 약간 떨어진... 다리 건너 길 모퉁이...

작은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내 조국의 기념비 때문에 흥분하여 일본인들을 마구 욕했다.

몇 일 동안은 많은 것들이 부러워서 얄미웠는데...

이제 털어 놓고 속 시원히 욕할 거리를 하나 찾은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약자의 변인가...?


우리는 다시 오까야마로 돌아와 구르즈미교의 본부로 올라갔다.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산 전체를 그들의 땅으로 소유한 교파란다.

일본인들의 종교생활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모두 검은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흰 버선에 나무게다를 신고 있었다.

그들이 마련한 환영식에서는 교주의 장남 무네미치 옆에 내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런던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하는 그와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서는 카톨릭신자 분위기가 난다나...

유쾌한 젊은이와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다다미방으로 가서 세수도 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