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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음에서 피는 꽃] 역치를 넘어서는 2월의 나무들

truehjh 2007. 2. 14. 21:40

역치를 넘어서는 2월의 나무들

 

잎샘추위와 꽃샘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 달이 2월이란다. 긴 겨울이 끝나는 달 2월의 풍경은 마치 동이 트기 바로 전에 짙은 어둠이 내려 있는 새벽과 같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보다 왠지 더 암울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살아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암담함이 서려있는 2월이다. 이렇게 삭막한 2월의 산과 들에는 메마른 줄기와 잎들이 나뒹굴고 있으며 나무들은 온통 옷을 벗고 나신으로 서있다. 지난 여름 화려하게 차려 입었던 옷들을 다 벗어 놓고 용감하게 자신의 헐벗은 모습을 드러내고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의연하게 보인다.

 

풍성했던 지난날들을 뒤로 하고,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그 모습이 안타깝도록 아름답다. 검다 못해 보랏빛으로 물든 상처를 끌어안고 발가벗은 채로 서 있는 모습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처연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이다. 어느 계절의 나무가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고 우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2월의 나무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용기로 인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용기는 그 안에 천재성, , 그리고 마술을 가지고 있다고 괴테가 말했다. 그러기에 용기는 꾸미거나 가장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정직함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진실함일 것이다. 그리고 용기는 자존심을 버리고 또 나를 버릴 수 있는 지혜이며, 닥쳐올 고난에 대하여 두려움을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이해일 것이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것들을 다 벗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벗어 놓을 뿐만 아니라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화려한 영광의 흔적뿐 아니라 상처로 얼룩진 모습이고, 실패로 가득했던 시간들이며, 떳떳하지 못한 이기심의 모습을 드러내야만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발가벗고 속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모른다. 그러한 용기가 있어야만 새로운 봄을 약속 받을 수 있는 가 보다.

 

또한 2월의 나무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인내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이다. 까마득한 암담함이 끝나면 희망이 솟아오르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기에 이겨낼 수 있는 인내 말이다. 그러므로 인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속으로 속으로 다짐하며 견디어 오는 세월의 마지막 안간힘이며, 욕심내지 않고 겨우겨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다음의 세대를 꿈꾸는 소망일 것이다. 그리고 인내는 땅 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한 방울의 수분이라도 끌어 올리며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성실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포기하기는 쉽다. 견디어 내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되는데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그만 손을 놓아버리는 우를 범할 때가 한 두 번 이 아니다. 하지만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라고 외친 이은상의 시조 한 구절처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고난을 이겨내야만 한다. 새순을 내어 놓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마지막 겨울의 역경을 견디어 내야만 한다.

 

우리는 역치(threshold value)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역치란 생물의 감각에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최소한의 자극의 강도다. 즉 신경이나 근육 등에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 자극값이며, 역치를 또한 최소 한계값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을 넘기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역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어한다. 가장 혹독한 시간을 잘 견디어 내야만 끝이 오고, 그 끝이 다시금 새로운 소망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2월의 나무들처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리 자신을 북돋우자.

 

이제 겨울이 끝나면 곧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을 향해 발돋움할 수 있는 봄을 맞이하자. 인내로 다져진 용기를 가지고 다가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