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antary&Faction/My Story In His Hand(1955~ )

(003) 엉터리 민간요법

truehjh 2006. 12. 1. 23:28
증명도 되지 않은 이런저런 주사를 너무 많이 맞은 탓에, 어린아이의 자그만 엉덩이는 성할 날이 없다. 보들보들한 피부가 시퍼런 멍으로 가득해 주사 놓을 곳이 없을 정도다. (1958년) 


소아마비로 운동신경이 마비된 나의 왼쪽 다리는 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치료의 때를 놓치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시던 부모님은 내로라하는 병원의 문을 다 두드려보셨답니다. 그러나 큰 병원에서조차도 특별한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셨답니다. 낙망하신 부모님은 증명되지 않은 작은 소문들을 의지해 여기저기를 들락거리며 소아마비 치료의 길을 찾아보셨겠지요. 나를 위해 좋다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보려고 나서셨다네요. 특히 엄마와 할머니는 왼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여 늘어져 있는 나를 들쳐업고 용하다는 민간요법이란 민간요법은 다 찾아다녔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을 전후해서 가장 많은 수의 어린아이들이 소아마비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렸다는 것은 6.25 전쟁 이후 궁핍한 시대에 태어난 개인의 비극이며 또한 시대적 비극입니다. 그리고 그 비극에는 고통과 슬픔과 눈물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새로 발생한 전염병에 민간요법이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마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만한 방법이 별로 없으니까, 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서 엉터리 민간요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요. 

대침에 효력을 보았다는 소문을 들은 엄마는 매일 같이 나를 업고 침을 맞히러 다녔습니다. 대침을 맞으면 뛰어다닐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입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아프다는 대침을 맞고도 큰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달구똥 같은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대침을 맞으면서 치료하면 뛰어다닐 수 있으니까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약이나 침뿐만 아니라 소아마비에 좋다는 이런저런 주사를 너무 많이 맞은 덕분에 내 자그마한 엉덩이는 파란 멍으로 가득해서 주사 놓을 곳이 없을 정도였답니다.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을 이용해서 가짜 수입약들, 가짜 침쟁이들, 가짜 주사들 등도 많았는데 엄마는 양의사이신 외할아버지 몰래 가짜 치료에 매달리며 애를 태우셨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의 부모 주변에는 어떤 약 뿌리를 먹고 나았다는 둥, 어떤 침을 맞고 나았다는 둥, 어떤 주사를 맞고 나았다는 둥,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했다고 합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어디든 찾아다녔답니다. 그 당시는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이었고, 병원 시설이 그리 발전된 편이 아니어서 병이 나면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나무랄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달구똥’ 이야기는 눈물이 많은 나를 달래곤 할 때마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에 ‘절뚝발이, 다리 병신’이라고 놀림을 받고 집에 들어와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며 울면 할머니는 나를 업어주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대침을 맞는 어린 내 모습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장면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너는 용감한 아이야’라고 응원해 주시는 할머니의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