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CHARMBooks/e<마음에서피는꽃>

e[마음에서 피는 꽃] 노란 은행잎 하나의 무게로...

truehjh 2006. 11. 3. 09:30

노란 은행잎 하나의 무게로

 

유난히 막연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유 없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가을, 그 중에서도 늦가을 11월을 맞이했다. 11월은 숫자 가운데 특별히 외롭게 느껴지는 1이라는 숫자 두개가 나란히 서 있는 달이다. 외로운 숫자 1이 서로 만나 짧은 평행선을 긋고 있어 더욱 외로워 보인다. 단풍들어 아름다움을 뽐내던 나무들도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11월에는 마음이 공허해 진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무작정 걷다보면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낙엽마저 애처롭게 느껴지고, 바람소리 또한 스산하게 들리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하게 빛나는 노란색으로 물들어 풍성한 위엄을 뽐내던 은행나무도 이제 가난한 모습으로 길가에 서있다. 2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온 은행나무(Ginkgo biloba Linnaeus)Ginkoales 식물군 중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종으로, 다윈은 살아있는 화석즉 오래된 화석식물이라고 하였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Ginkoaceae)에 은행나무 1, 1종만으로 존재하고 있는 외로운 식물로써 고생대부터 빙하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온 식물이란다. 높이가 5미터에서 40미터가 넘는 것도 있으며 암나무와 숫나무가 따로 있어서 암나무에는 암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숫나무에는 수꽃이 피나 열매가 없다. 하지만 암꽃 혼자 결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암나무 근처 어디선가 숫나무가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만 수분이 가능하다.

 

은행나무의 열매인 은행은 기침이나 천식을 가라앉히는데 효과가 있어 오래 전부터 약으로 쓰여 왔으며, 최근에는 잎에서 혈액순환촉진성분이 다량 발견되어 그 유효성분이 의약품으로 만들어져 인간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목재는 단단하고 질이 좋으며 방충의 효과가 있어 서책을 보관하는데 쓰이기도 했으며 은행나무에서 나오는 방향성물질은 정신적 안정을 줄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 오염정화의 능력까지 갖고 있어서 환경오염에 강해 도시의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고 한다.

 

미세한 바람이 불면 길가에 서있는 은행나무에서 노란 나뭇잎 하나가 뱅그르르 떨어진다. 차도위에, 보도 위에, 야트막한 집의 지붕위에 떨어져 있는 노란 은행잎들도 작은 바람을 견디어 낼 수 없다는 듯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정처 없이 굴러다니는 은행잎들을 보면서 애처롭고 적막한 기분에 휩싸여 오랜만에 나 자신을 위한 눈물을 흘렸다. 작은 나뭇잎 하나가 내 실존의 모습과 닮아있음이 느껴지는 너무나 쓸쓸한 순간이었다.

 

바람도 없는데 작게 흔들리고 있는 노란 은행잎의 떨림이 내 가슴에 파도로 밀려오고, 거센 비바람이 되어 휘몰아치고 간다. 멀리서, 더 멀리서 부르는 소리는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나는 소리로 내놓을 수도 없는 가슴 아픈 외로움에 젖어 있고, 다시 쓸쓸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눈물 흘리는 것이다. 비우는 일이 필요한 때라고 외치면서도 왜 쓸쓸함으로 가슴 아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흔히 사람들은 너무너무 외로운 상황에 처하면 말 못하게 외롭다고 말한다. 그 말은 외롭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외로움을 뜻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본질적인 외로움은 함께 있건 홀로 있건 간에 관계없이 느낄 수 있는 절대 고독이며, 이러한 외로움을 통해 느끼는 막연한 그리움이란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대중 속에서도 고독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합일에 대한 바람인 것 같다. 자궁에서 떨어져 나간 경험을 통해 어머니와의 합일을 꿈꾸며, 또한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며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그리움이 본질이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바람 불 때마다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하나의 무게로, 그리고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는 노란 은행잎 하나의 떨림으로, 그 하나의 고통으로 너무도 쓸쓸한 계절의 시간이 계속된다. 그러나 삶의 존엄성이 비록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의 무게보다 더 가볍게 느껴질지라도, 삶의 희망이 비록 나뭇잎 하나의 떨림보다 더 미세하게 전해질지라도 이 계절의 고독과 절망과 적막감을 견디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온 세상에서 동종 하나 없는 외로운 존재로서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저 장엄한 생명력의 소유자 은행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