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문 밖에서 절뚝거리며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어른이 말한다. “얼굴은 곱게 생겼는데, 어쩌다 다리가... 쯧쯧쯧...” (1959년) |
네 살 때입니다. 그 당시는 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품이 여러 가지 있었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의료 원조품인 작은 보조기를 어렵게 구해 주셨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보조기가 얼마나 싫었던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딘가에다 버리고 왔더랍니다. 하긴 가볍게 팔짝팔짝 뛰어다닐 나이에 무거운 쇠로 만든 보조기를 신어야 한다는 것이 힘겨웠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때 보조기를 잘 착용했더라면, 나는 더 일찍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학교 다닐 때 가족의 손을 붙들고 의지하거나 업혀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가정법으로의 상상입니다.
보조기는 차치하고, 온갖 약과 주사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나의 놀이터는 집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방 한구석에 있는 반닫이 서랍을 열어 놓고는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놀이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흙 위에서 뛰어다니며 놀아야 하는 시기에 집 안에만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에게 특별한 놀거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옆에서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엄마에게 “밖에 나가 놀면... 사람들이... 얼굴은 곱게 생겼는데, 어쩌다 다리가... 쯧쯧쯧... 그래”라고 종알거렸답니다. 내 얼굴이 특별히 고와서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누구라도 어찌 곱지 않겠습니까.
가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어릴 적 내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어쩌다 다리가 그렇게 되었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이어야 했을까요. 그 나이에도 어른들의 ‘쯧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마음에 남았겠지요. 연민을 느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쯧쯧거림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니까요. 어쩌다 다리를 못 쓰는 아이가 되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겨우 네다섯 살의 나이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 닥쳐오는 세상의 거친 파도는 이렇게 차분하고 찰랑거리는 물결로 다가와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풍파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미래를 말입니다.
나는 어쩌다 장애아이가 되었을까요. 어른이 된 나에게 물어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이에게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고문 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나중에 엄마와 아버지가 그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에서 그 답을 보았지만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답이었습니다. 어린 딸의 장애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자고 쓰여있었으니까요. 오랜 고통 끝에 딸의 장애를 신앙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있었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분들이 얻은 답이었을 것입니다.
소아마비에 걸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아이의 유년 시절은 다양한 놀이에 노출될 기회가 적어 다른 아이들보다는 관계의 폭을 확장해 가는 경험이 부족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남다른 사랑과 기독교 교육적 관심으로 크게 굴절되지 않은 시간을 보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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