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사진 단상
이마트 안에 있는 미용실을 예약해 놓은 날짜가 엊그제였다. 외출할 날짜를 정해 놓고 보니 여권 사진 생각이 났다. 사실 10년쯤 전에 재발급받은 여권의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문자를 받은 지가 몇 개월 지났다. 다시 재발급받으려면 최근에 새로 찍은 여권용 사진이 필요한데,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어 사진 찍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보니 유효기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나간 김에 여권 사진까지 찍고 들어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AI에게 가까운 사진관을 물어 몇 군데 추천을 받았다.
예약시간에 맞춰 이마트로 가서 헤어컷트 하고, 장을 보고, AI가 알려준 사진관을 찾아 홈플러스에 들렸다. 요즘은 여권 사진 찍을 때 안경을 쓰고 찍어도 괜찮다는 사진사의 말에 두꺼운 패딩 겉옷만 벗어 놓고 화장 안 한 평소의 맨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왼쪽 어깨 조금만 올리시고... 찰칵’, ‘고개 오른쪽으로 조금만... 찰칵’ 이렇게 두세번 찍은 것 같은데 다 찍었다며, 결제하고 30분 후에 문자 받으면 찾으러 오란다. 뭔가 시작만 하면 금방 해결되는 세상인데 몇 달이나 미룬 나의 행동양식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30분을 어딘가에 가서 기다려야 한다. 커피전문점으로 갈까, 도넛집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롯데리아로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버거킹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햄버거가 먹고 싶어져서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은 해 놓았는데, 그 지점의 서비스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었다. 전광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고갯짓만 했다. 젊다 못해 어린 직원이 굼뜨게 행동하고 있는 늙은 손님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나는 전광판을 찾을 수 없어 내 번호 불러 주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주문한 것 같은 메뉴가 판매대 위에 계속 얹혀있는 것이 보였다. 손님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직원은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가까이 가서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주문한 메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이가 없었다. 조용히 들고 와서 의자에 앉았다. 먹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사라졌다.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도 않고, 소화도 안 될 것 같았다.
식판을 들고 가서 포장도 건드리지 않은 햄버거를 종이봉투에 넣어달라고 했다. 종이봉투의 값이 100원이란다. 카드로 100원을 결제하고 나서, 전광판이 어디에 있느냐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다른 직원이 매장 끝부분으로 직접 나를 데리고 가서 위치를 알려준다.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진실로 고맙지는 않았다.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고 웃으면서 그 직원에게 말하고 나오는데 뭔가 가슴이 답답했다. 늙었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가지고 가고 싶지도 않은 햄버거를 들고 나오며 핸드폰을 보니 사진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와있었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찾으면서 주차권을 문의했다. 영수증을 가지고 3층에 가서 전산시스템을 이용하면 된단다. 3층으로 올라갔다. 그 넓은 곳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매고 다니다가 찾긴 찾았는데, 내 손으로 아무리 화면을 터치해도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당황하고 서 있는데 멀리서 다가온 젊은이가 친절하게 진행해 주어서 해결하긴 했다. 물론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번 했다. 그러나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 도움 없이는 살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 차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매일 동생 가족과 함께 움직이곤 할 때는 신경 쓰지 않던 일을 직접 내가 하려니 헷갈린다. 왔다 갔다 하면서 겨우 내 차를 찾았다. 운전석에 앉아서야 사진 생각이 났다. 사진 봉투를 찾아 꺼내 보았다. 그런데 사진에 무슨 짓을 한 건가? 너무 젊게 나와서 내가 아닌 줄 알았다. 누런 얼굴은 새하얀 분을 바른 것처럼 뽀얗게 되어 있었고, 주름은 다 뭉개져 있고, 그 많던 꺼먼 점들은 사라졌다. 핏기 없는 입술도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뽀샵이 너무 심했다.
화장한 내 얼굴을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사진 속의 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70 넘은 노인 얼굴을 이렇게 변장해 놓아도 되는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엄청 젊어 보이니 오늘 늙었다고 마음 고생한 것은 모두 잊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ㅋ...ㅋ...

집에 와서 높은 돗수의 돋보기를 끼고 밝은 빛 아래서 사진을 다시 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눈가와 입가의 주름이 다 보인다. 거기다가 움푹 패인 눈꺼풀까지 다 보인다. 염색해 본 적 없는 흰머리도 다 보인다. 내 나이로 보여서 너무 다행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불과 30분 전 사진 속의 내가 젊어 보였던 것은 지하 주차장의 컴컴한 빛과 돗수 낮은 돋보기 탓이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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