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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영원한 안식을 위한 순례 -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truehjh 2008. 7. 10. 18:16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 이 땅의 손님으로 머물다 간 영혼을 만나다

 


캐슬린 에릭슨 지음 | 안진이 옮김 | 신국변형양장 | 372면 | 값 17,000원

출간일자: 2008. 4. 28. 원서명: At Eternity's Gate

ISBN: 978-89-352-0737-4 (03230)


출간 의의


신앙의 눈으로 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세계

반 고흐의 회화와 신앙, 삶을 총체적으로 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해 11월 4일부터 올 3월 16일까지 전시한 “불멸의 화가 - 반 고흐”전에 다녀간 관람객이 약 82만 명에 이른다고 최종 집계한 바 있다(<한국일보> 3월 16일자). 국내 미술전시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번 전시회는 반 고흐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애정을 반증하는 한 예다. 그와 관련한 무수한 기사나 영화, 노래, 포스터, 책과 논문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이해는 이뤄지고 있는가? 적어도 이 책의 저자는 아니라고 본다.

캐슬린 에릭슨은 먼저 반 고흐의 삶을 소개하고 중요한 작품을 평가하면서 그간 필요 이상으로 무시당했거나 번번이 잘못 해석됐던 사실들을 지적한다. 그가 주고받았던 수많은 편지들 속에는 성경 구절과 기도문, 전도사 시절 이야기, 전통적 종교 사상과 근대적 사상을 두고 갈등했던 내용, 그리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종교적 개념들로 가득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의 종교적 관심사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가 교단을 떠나 화가로 새 출발한 1880년부터는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견을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990년, 반 고흐 서거 100주년을 맞아 회고전이 열렸을 때 고흐가 남긴 가장 전통적인 두 점의 종교화 <피에타>와 <나사로의 부활>은 반 고흐 미술관 지하 금고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실제로 반 고흐의 편지에는 회고전을 장식했던 작품들보다 <피에타>와 <나사로의 부활>을 언급한 내용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주최한 측에서는 두 작품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마지막까지 신앙이라는 심오한 주제와 씨름했으며, 그의 영적 순례는 중단 없이 이어졌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룬 고전주의 회화로 돌아가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당대의 종교가 놓치고 있던 심오한 주제들에 반 고흐가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가를 작품으로 보여주고 해설로 들려준다. 나아가 말년에 경험했던 불안정하지만 흥미로운 심리를 파헤쳐냄으로써 반 고흐를 천재나 광인 또는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신앙을 버린 화가로 보는 일반적인 견해를 거부하고 ‘영적인 삶’이야말로 반 고흐의 삶과 신앙과 회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결정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반 고흐 가문과 그의 신앙적 배경_흐로닝언 신학과 요한네스 스트리커


반 고흐의 전기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취약했던 부분은 그의 초기 신앙에 대한 설명이다. 그나마 최근 출간된 전기 가운데는 그의 신앙적이고 영적 여정의 중요성을 언급한 책이 간혹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신학적 배경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반 고흐가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소속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칼뱅주의자였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고흐 집안은 칼뱅주의와 반대 입장을 가졌던 아르미니우스의 입장을 지지한 흐로닝언 신학 이론을 따르고 있었다(도르트레히트 회의[1618-1619]에서 아르미니우스는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모더니즘과 함께 초기에 반 고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흐로닝언 신학은 네덜란드의 몇몇 대학에서 정립된 신학 사상으로, 자유로운 인간 의지를 옹호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각자 선택할 수 있으며 구원 받을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칼뱅주의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반 고흐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소박한 신앙에 몰두했던 것이나, 부패한 세상을 등지고 천상의 예루살렘을 향해 나가는 순례자 개념에 주목했던 것은 아버지와 삼촌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특히 삼촌이자 유명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저술가였던 요한네스 스트리커가 주장한 인간으로서의 예수, 예수를 닮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기독교인의 의무, 하나님 나라 등의 개념은 반 고흐의 신앙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 중에서도 ‘방황하는 순례자’ 개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저자는 이처럼 그 당시 반 고흐 가문의 신앙적 배경을 소개함으로 그의 신앙적 에토스가 어떠했는지를 밝히고,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복음주의로의 전향 사실이나 그가 개인적 구원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벨기에에서 18개월간의 전도사 활동을 했다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이해는 “예술가로서의 그의 생명은 그가 기독교를 거부하고 포기했을 때 시작되었다”고 하는 미술사가들의 평가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신질환에 대한 해석 _ 정신운동성 간질


반 고흐가 살았던 수수께끼 같은 삶은 여전히 많은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이를 설명하는 근거들은 빈약할 때가 많았다. 특히 반 고흐가 앓았던 정신 질환과 자살에 관한 여러 진단과 억측은 그의 모습을 많이 왜곡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제기한 해석으로, 그는 반 고흐의 작품 연구를 통해 그가 정신분열증 환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를에서 지내던 1888년 정신 질환이 악화되자 작품에 극적인 변화들이 생겼다고 보았는데, 이는 정신질환이 예술적 영감과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작업 형식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다. 반 고흐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미친 천재였다는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p. 212-220). 그러나 저자는 병증이 미친 영향은 작품의 양식이 아니라 주제와 소재였으며, ‘새로운 양식’ 또한 정신분열증의 산물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받은 다양한 영향을 의식적으로 종합하여 이룩한 독자적인 작풍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저자는 처음으로 그 동안 학자들이 반 고흐의 병을 어떻게 진단, 분석해왔는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반박하는 한편, 편지와 지인들의 회상, 그를 진찰한 의사들(레이, 페네롱, 가셰)의 기록을 토대로 그의 병을 측두엽 기능장애(temporal lobe disfunction)라는 일종의 정신운동성 간질이라고 진단한다. 반 고흐가 귀를 일부 절단한 후 그를 진찰하고 치료했던 의사들이 맨 처음 내린 진단도 측두엽 기능장애였다. 저자에 따르면, 정신분열증이라는 견해는 이 질병의 성격을 전혀 모르는 데서 비롯된 그릇된 진단으로, 반 고흐가 대중적인 신화의 주인공으로 등극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전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 고흐는 왜 자살을 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지만, 저자는 일생 동안 그를 괴롭혔던 심각한 우울증에서 조심스럽게 찾는다. 이와 함께 병증이 그의 신앙생활과 작품에 미친 영향을 정리했다. 그의 삶과 예술에 나타난 강력한 종교색은 상당 부분 성격적인 요인이 있지만 간질 또한 중요한 요인이라는 논지다.


종교색 짙은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_ 종교화 3부작 중심으로


아를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병원에 수용된 후로 반 고흐는 개인적인 삶에서나 예술에서나 다시금 과거의 전통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처음으로 기독교적 성격이 뚜렷한 주제이자 성경에 나오는 주제를 택해 일명 ‘종교화 3부작’ <피에타>, <나사로의 부활>,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렸다. 또 초창기에 제작한 판화 한 점을 유화로 다시 그려서 <영원의 문에서>라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제목을 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평가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다른 화가의 걸작을 모사한 작품인데, <피에타>와 <선한 사마리아인>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나사로의 부활>은 렘브란트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고통과 치유, 죽음과 부활이라는 종교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 그는 죽어가는 예수의 고통, 사마리아인의 아픔, 나사로의 쇠약해진 육신을 자신이 느낀 고통과 동일시했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피에타>에 등장하는 예수의 얼굴과 <나사로의 부활>에 등장하는 나사로의 얼굴을 자기 얼굴로 바꿔 그렸다. 결국 반 고흐의 주제 선택을 좌우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시련과 고통으로 점철된 시기라는 종교적 믿음과,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아 부활하리라는 희망이었다. 또한 그간 수많은 해석과 평가가 이뤄졌던 <별이 빛나는 밤>과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과 평가를 시도한다. 즉 그가 신앙을 버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준다는 것이며, 정신병적 발작이 임박했다는 표시가 아니라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인식과 부활을 향한 희망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보여주려고 하는 바는 그의 삶과 작품을 규정했던 대부분의 관념이 신앙이었다는 것과 이러한 관점으로 그의 삶과 작품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느냐이다. 모두가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도 있지만, 그 논지의 근거는 부실하지 않다. 저자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 그의 예술 세계와 종교적 여정, 또 그가 겪었던 정신적 시련을 한데 엮어 매우 복잡한 한 인간의 매혹적인 초상이 그려내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의 영적인 요소에 대한 에릭슨의 해설은 널리 퍼져 있는 그릇된 가정들을 바로잡아 준다. 반 고흐의 예술 세계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명쾌하고 알기 쉬운 책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깊이 있는 지식과 뛰어난 판단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반 고흐가 성장기에 얻은 종교적 지식과 그것이 그의 삶과 사상과 예술적 선택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을 다루며, 신화처럼 알려져 있었던 반 고흐의 병에 대해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여 병의 종교적 성격을 밝히고 병이 작품 활동에 미친 영향을 참신한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책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하다.”

존 월포드, 휘튼 대학 교수


차례


추천의 글

감사의 글

머리말_ 영원한 안식을 향한 순례


1장 믿음의 가문 - 네덜란드 신학의 유래ㆍ반 고흐 가문의 신앙적 전통ㆍ결정적인 만남, 요한네스 스트리커ㆍ하나님 나라의 원리


2장 순례자의 신앙 - 성직으로의 끌림ㆍ그리스도를 본받아ㆍ3순례자의 영성/보리나주의 성자ㆍ3장 화가로의 전향


3장 화가로의 전향  - 회칠한 교회 벽과 성직자의 위선ㆍ가족과의 갈등ㆍ복음을 간직한 화가의 길ㆍ“종교는 사라지나 하나님은 영원하다”ㆍ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라ㆍ작품 속에 녹아든 하나님 나라ㆍ기독교와 근대성의 조우


4장 간질과 우울증, 그리고 위기 - 병의 증상이 신앙생활과 작품에 미친 영향ㆍ위기의 시작ㆍ위기의 원인_심리학적 주장ㆍ위기의 원인_정신분열증이라는 주장ㆍ위기의 원인_간질이라는 주장ㆍ위기의 원인_생리학적 주장ㆍ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ㆍ오베르에서의 마지막 시간


5장 영원의 문에서 - 종교적 주제로의 회귀ㆍ말년의 종교화 3부작ㆍ논란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ㆍ신비의 <별이 빛나는 밤>ㆍ다시 <영원의 문에서>


맺음말 - 마침내 별에 닿은 순례자


참고문헌

도판 목록

연표

인물 찾아보기


지은이와 옮긴이


캐슬린 에릭슨(Kathleen P. Erickson)

시카고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기독교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유기고가 겸 사진가로 활동 중이며,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에 관련된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1차 자료에 깊이 천착하는 글쓰기는 이 책에서 고흐의 편지와 작품을 설명해가는 데서 잘 드러난다. 즉 말년의 종교화 3부작이나 <성경이 있는 정물><까마귀가 나는 밀밭>처럼 그간 필요 이상으로 무시당했거나 잘못 해석됐던 사실과 내용을 지적하고, 그러한 비평을 바탕으로 반 고흐의 종교적 관심사가 그의 삶과 작품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밝힌다.


안진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대학원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폭풍의 언덕》《빌레뜨》《범선의 역사》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혼란스러운 19세기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1853년에 태어났다. 19세기에는 모든 분야의 사상이 다 그러했듯 종교 사상도 매우 유동적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촉진했던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 위계질서가 흐트러지고 가톨릭 교단 내 서열이 근간부터 흔들렸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정신이 폭발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불과 한 세기 전 계몽주의 시대를 지배했던 이성적 확신은 산산이 부서졌다. 특히 성경과 기독교 전통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19세기 명상가 랄프 에머슨(Ralph Emerson)은 “젊은이들은 머리에 칼을 품고 태어났다”는 말을 남겼고, 나중에도 “권위에 의거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라는 말로 당대의 회의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믿음이란 개개인이 느끼는 내밀한 감정을 따르는 문제라는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1768-1834)의 사상과, 믿음이란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라고 주장한 키르케고르(S. A. Kierkegaard, 1813-1855)의 이론도 19세기에 탄생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가톨릭 전통이 갖고 있던 불변의 권위와 성경의 절대적 확실성에 금이 갔고, 내면에서 신앙 체험을 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9세기의 신앙인이었던 반 고흐는 영혼의 방랑자 내지 순례자가 되었다. 반 고흐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이 땅을 찾아온 손님’이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반 고흐는 전형적인 19세기 사람으로, 통일성을 잃은 중세적 사고와 여러 가지 요소가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삐걱대는 근대성의 대결에 휩쓸리며 중세 신비주의와 근대적 성격을 동시에 추구했다. _ p. 30-31에서


반 고흐의 예술과 생애를 다룬 대부분의 학자들은 보리나주에서 보낸 시기를 ‘종교적 광신주의 시기’로 표현하고, 1880년 반 고흐가 직업 화가가 되려고 교회를 떠날 때 종교적 열정도 기꺼이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반 고흐가 추구했던 신앙은 극단주의라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정착된 전통적 기독교 신앙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나중에 예술적 동기를 발견했을 때와 똑같이 특유의 열정을 가지고 ‘종교적 동기’를 포착했던 것이다. 그가 보여 준 종교적 열정은 때로는 동시대 사람들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지만, 그렇게 불꽃처럼 강렬한 성격이야말로 그의 본성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종교적 신념을 최고조로 실행하는 삶을 살자면 그처럼 극단적인 자기 부정과 희생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반 고흐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쳐 가며 극도의 금욕 생활을 했던 것은 정신이상이나 괴벽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선택한 종교 전통, 즉 ‘예수를 본받는 사도다운 삶’이라는 원칙을 따라 일관성 있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_ p. 86-87에서


평범한 것 속에 깃든 무한함과, 일상생활에서 직접 체험한 신비로움은 반 고흐 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는 신성한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종교화에 나오는 주제와 도상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치는 주제 가운데서 신성한 것을 발견하고 포착하려 노력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 보자. “나는 예배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그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예배당 건물이 제 아무리 장엄하고 멋지다 해도 건물에 없는 무언가가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있게 마련이다. 내게는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불쌍한 거지나 창녀의 영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농부들을 그리고 배경에 교회 첨탑이나 십자고상, 성만찬 등 기독교적 성격이 명백한 도상을 배치한 작품을 많이 남긴 점으로 보아 반 고흐는 여전히 기독교적 겸손을 중시했던 듯하다. 반 고흐는 밀레나 이스라엘 등 자신이 존경했던 화가들이 했던 것처럼 씨 뿌리는 사람, 땅 파는 사람, 농촌 아이들처럼 소박한 인물을 그릴 때나 창녀를 그릴 때도 신성한 성격을 부여했다. 무지하고 가난하며 온순한 사람들이 가진 경건한 태도에 대한 경외심은 네덜란드 시절에 제작한 첫 번째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_ p. 140에서


반 고흐가 정신병적 환각에 사로잡혀 광기어린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는 그릇된 통념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발작 간기에 활동이 왕성해지는 현상에 대해 반 고흐가 직접 서술한 대목을 살펴보면 발작 중에는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마음이 안정되어 있을 때 그림을 완성하려고 노력했으므로 그의 병은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_ p. 240에서


<별이 빛나는 밤>과 비슷한 작품으로 반 고흐가 1890년 5월에 제작한 <별이 빛나는 측백나무 길>도 신비로운 황혼을 묘사한 작품이다. 길에서 방랑하는 나그네들 뒤로 마차가 따라가는 목가적인 풍경은 우정과 사랑에 목말라했던 반 고흐의 심정을 대변한다. 두 나그네는 길을 떠난 순례자로 보이며, 길에 불쑥 솟은 측백나무는 화면 공간을 분할하고 수직축을 강조한다.

풍경을 살펴보면 반 고흐가 여전히 영원과 사후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측백나무 한쪽 옆으로는 가까스로 밤하늘에 모습을 드러낸 밝은 저녁별이 동심원 모양으로 빛을 발한다. 죽음의 오벨리스크라고 할 수 있는 측백나무를 기준으로 저녁별의 반대편에는 새로 돋은 초승달이 보인다. 초승달은 반 고흐의 주된 관심사이자 영적 여정에서 마지막에 얻는 위안인 재생과 부활을 연상시킨다. 순례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처로 오라고 손짓한다는 점에서 초승달은 버니언이 쓴 책에 나오는 ‘하늘의 도시’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별이 빛나는 측백나무 길>에는 반 고흐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삶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이제 죽음을 통해 영원한 해방을 맞이할 희망이 보인다고 여기기 시작했다는 우울한 현실이 <별이 빛나는 밤>보다도 더 뚜렷이 나타나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은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영원의 문’에 도달한 세상을 이어 주는 작품이다.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 땅에서 하늘로 위풍당당하게 솟은 측백나무, 별 등은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결합을 향한 반 고흐의 염원을 상징하며, 죽음과 불멸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_ p. 321-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