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 291

[토픽2수업] 선생님이라는 호칭

선생님이라는 호칭 마지막 자원봉사 기회라 생각하고 시작한 토픽2 시험을 위한 쓰기 수업이 1년 3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모든  수업은 장애여성학교에서 몇 학기 강의할 때의 교안과 토픽2 쓰기 교재들을 참고해서 만든 커리큘럼으로 진행했고, 5월 마지막 주일 수업을 끝으로 하여 미얀마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던 기간이 막을 내렸다. 참 즐겁고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래전 글쓰기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지만, 외국인에게 글쓰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연결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어려웠던 점 중의 하나다.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되풀이하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참 훌륭해 보였고 고마웠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수업..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소화불량으로 심각하게 속앓이를 했다. 처음 며칠간은 물조차 넘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원인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그 상황 자체가 덜컹 겁이 나서, 고작 생각해낸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었다. 게을러서인지, 아니면 먼 나라 이야기 같아서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멀다고 느껴져서인지 지금까지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지난 열흘간 어지럼증으로 인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꿀물과 소금물을 마시며, 꼼짝도 할 수 없이 앓아누웠던 상황이 계기가 되었다. 물론 얼마 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가 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는 친구의 상황으로 다시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위기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고독사의 가능성을 무..

기 부족

일주일 내내 어지럼증과 위무력증으로 엄청 고생하다가 오늘 아침에는 정신을 차리고 혈액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토요일 오전 진료는 9시부터라고 해서장조카의 도움을 받아 시간 맞추어 갔는데,일찍 온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몇 년만에 병원을 방문한 것인가.코로나 백신 맞으러 갔다온 이후 처음 병원행인 것 같다.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하는 일인지.아니면 이런 것도 감사해야 할 조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검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우선 전정기관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소견을 듣고 약을 처방받았다. 결국은 영양부족, 혈부족, 기부족이라는 의미인데방법은 잘 먹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잘 먹어야하는 지를 몰라서 못 먹는 것은 아니다.실제로 먹고 싶은 생각이 1도 없고,위가 뭉쳐있는 것 같아서 먹을..

외로운 식탁

외로운 식탁 며칠 전 아침이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실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천장과 벽면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물 한 모금도 삼키기 어려운 어지럼증이 또 시작되었다. 머리맡 어딘가에 있는 핸드폰을 찾아들 기운도 없는 데다가, 머리를 움직이는 것 역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도 마실 수가 없는데 부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둘째 날엔, 어지러움이 조금씩 가셔서 꿀물과 소금물 몇 숟가락씩 떠 마셨다. 셋째 날에도, 꿀물과 소금물을 마시고, 영양 시럽을 마셨다. 넷째 날, 여행에서 돌아와 오후 늦게 출근한 동생에게 죽 한 그릇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생은 ‘배달시켜 먹으면 되지.’라고 하며 나..

걸어야 하는지... 걷지 말아야 하는지...

걸어야 하는지... 걷지 말아야 하는지... 11시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 무슨 할 일이나 있는 것처럼 제시간에 일어나곤 하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마음 내키는 대로 늦게 일어났다. 하고 싶은 대로 해서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기분이 나쁘다. 이건 또 무슨 까닭일까.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감정선이다. 최근에 나타난 여러 가지 증상을 살펴보면, 근감소를 줄이고 가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대책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 순간에도 내 몸의 상태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깨를 좀 펴고 걸어볼까 했는데 맘대로 되지 않는다. 넘어질까 봐, 발바닥이 아파서, 근육이 땡겨서 등 등의 이유로 맘은 다시 움츠러든다. 발바닥이 갑..

셀프 부양

지난주 초다.  점심에 밑반찬 만드느라고 오래 서 있었는데, 발목 부분이 땡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춤했었다. 빨리 마치려고 서두르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설거지까지 마칠 때쯤에는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할 수 없이 의자를 밀고 와서 한참 앉아 있다가 양 크러치를 짚고 움직였다. 그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했으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발을 짚으려니 삐끗한 상태처럼, 찌릿 전기가 온 것 같은 강렬한 통증이 스쳤다. 무서워서 더 이상 발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겨우 발가락에 힘을 주고 몇 걸음 움직여 보았다. 발가락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조금 남아 있는 듯했다. 그 근육으로 조금씩 이동해 보..

[토픽2수업] 도파민 분비

도파민 분비 지난주 주보에 한국어교사 봉사자 모집 광고가 올라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봉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오전에 전화를 했다.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등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면대면 수업이고, 매 주일 오후에 진행되며, 장소는 교회에서 좀 멀고, 계단이 높은 2층이란다. 친절한 담당자에게서 함께 참여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이동이 불편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서, 줌수업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종료했다. 지난 1년간 미얀마 학생들과 줌으로 진행한 토픽시험 준비 수업은 만족감이 아주 높다. 특히 내가 작성한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 쓰기 수업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도파민 분비가 왕성해..

[토픽2수업]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삶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삶 토픽2 수업 첫 번째 텀을 마무리하고, 다시 새로운 수업을 시작했다. 지난 10월 시험을 위해 연속해서 달려온 7개월이라는 시간이 벅찼지만 설렜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행복했다. 그러나 단지 낭만적인 감정에만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미얀마 학생들에게서 듣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인해 가슴 벅차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토픽시험을 보아야 하고, 나는 그 시험의 점수를 올리는 기술을 함께 알려주어야 했다. 이 수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대화를 익히는 수업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수업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할 때는 사랑..

[영태리집] 버리기(5) - 11월의 하늘 아래서 다시 펼쳐 든 책

얼마 전에 장애와 인권운동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모두 버리려고 정리하다가, 또 한 번 주춤하게 되었다. 혁명가이지만, 나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체 게바라의 책들 때문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 버리기로 마음먹은 후, 먼저 을 읽었다. 지금은 을 읽고 있는 중이다. 기억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내용의 글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세상을 보았던 모니터는 성경과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모니터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한 장의 사진을 본다고 하더라도 모니터의 크기가 다른 화면으로 본다면 서로가 그 간극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듯이, 어떤 모니터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