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Minimal Life 36

[행복주택] 웰컴데이

며칠 전 행복주택 입주자 웰컴데이에 다녀 왔다. 하자를 찾아내고 이런저런 문제들을 점검해야 하는 날인데 줄자로 칫수만 재고 온 것 같다. 창문도 열어보지 않고 왔으니 말이다. 이미 젊었을 때 해보아야 했던 일을 70이 넘어 시작하려니 서툴다 못해 헛점 투성이다. 정해진 시간에 아파트에 도착해서 사전점검 등록을 한 후 가장 처음 한 일이 핸드폰에 앱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모든 점검은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진단다. 곳곳에 젊은 도움이들로 배치되어 있어 친절하게 돕고 있지만, 나는 왠지 주눅이 든다.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다행히 어린 조카가 도와주어서 수월했다. 칫수를 재기 위해 줄자를 가지고 갔지만, 마음 먹은만큼 세밀하게 재지도 못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방이 작다. 몇 cm 차이로 ..

[영태리집] 컴퓨터 고장

얼마전 애착물처럼 사용하던 데스크탑 컴퓨터가 고장났다. 수리를 맡기려고 하니 너무 오래되서 다른 것으로 교체해야 한단다. 할 수 없이 퇴사한 직원이 쓰던 컴퓨터를 조금 손보아 어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새로운 컴푸터를 구입하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본체에서 나는 소음이 남아있다는 것 외에는 별 문제가 없으니 이것으로 일단 종료하기로 했다. 열흘 넘게 작업용 컴퓨터가 없는 세상에서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일상에서 남아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무료하고 지루하고 심심해서 선택한 것이 삼국지 재독이었다. 그런데 다시 이렇게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으니, 또다시 시간은 일상의 습관대로 흘러가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삼국지 읽을 시간이 마련되지 않을 것 같아 살짝 ..

[영태리집] 버리기(7) - 자존심도 버려야

버리기(7) - 자존심도 버려야 행복주택 입주 6개월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 행복주택으로 꼭 옮겨야 하는가’라는 자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결정된 것이니 그냥 한 번 더 모험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는 마음과 영태리집이 훨씬 편리하고 안정감이 있는데 굳이 옮길 필요가 있느냐 그냥 이 상태에서 살 수 있을 때까지 살자는 두 가지 마음이 서로 상충하면서 계속 갈등하고 있다. 이렇게 갈까 말까 흔들리는 이유는 현재 누리고 있는 형제들과 조카들과의 감정적인 교류 기회가 적어질 것 같아서이고, 경제적으로 더 빡빡해질 것 같아서이다. 실질적인 장점이 많은 곳은 영태리집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앞마당 풍경의 변화가 풍요롭다. 텃..

[영태리집] 버리기(6) - 엄마와 아버지의 유품들

영태리로 분가해서 나올 때 가지고 나와서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간수해 오던 아버지의 설교 원고들, 사진첩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해 놓으신 파일들 중 일부를 마음 졸이며 버렸다. 좀 더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또 다 버리지는 못했다. 동생집에서 영태리로 이사할 때는 엄마 아버지 유품들을 다 가지고 왔는데, 영태리에서 행복주택으로 이사할 때는 다 정리해서 버리고 가야한다. 왜냐하면 영태리 집의 1/3정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소유였던 옷, 가구, 그밖의 소장품들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옷장들, 엄마가 사용하던 이불들, 침대 덮개들, 베개들 이 모두를 버려야 한다. 그밖에 앨범이나 소도구들은 또 그대로 가지고 가겠지.

[영태리집] 버리기(5) - 취미 관련 자료 버리기

아마도 가장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서 공부한 과목이 영어일 것이다. 전공과목인 약학도 바이오회사에서 퇴직할 때까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맞는 말이다. 아직도 영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남아 있는 책들 중에 다시 펼쳐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은 버리기로 했다. 혼자 공부하고 정리해서 내 손으로 필기해 놓은 여러 개의 파일은 남겨두어야겠다. 혹시 치매예방을 위해 다시 영어공부가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리고...사진은 남기지 않았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마다 사 두었던 여행 관련 책들도 이 참에 모두 버렸다. 이전에는 책을 통해서 정보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디지털 사회가 되다보니 현장에 접근 가능해 바로바로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이..

[영태리집] 버리기(4) - 보험도 해지

풍족한 삶과 부족함이 없는 삶의 차이 어제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가 속절없이 TV 리모콘을 찾아 여기저기 눌렀다. 봄 계절의 옷을 판매하는 홈쇼핑에 눈이 머물렀는데, '돈을 아껴써야 하는 시기'임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저 옷 하나도 못사랴'라는 괴팍한 심보가 올라와 마음과 정신이 혼돈스러워졌고, 급기야는 자켓과 티셔츠를 몇 개 구입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계속 잠이 오지 않았다. 쓸모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자괴감과 옷을 입고 나갈 기회조차 없다는 우울감과 노인이 입을만한 디자인이 아닌 것 같은 낭패감이 몰려와 눈은 더욱 말똥말똥해지고, 머리속은 점점 더 뜨끈뜨끈해져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내내 명쾌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만 아작내고 있다. 아직도 내 나이와 내 처..

[영태리집] 버리기(3) - 버리지 못하고 다시 펼쳐 든 책

11월의 하늘 아래서 다시 펼쳐 든 책 얼마 전에 장애와 인권운동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모두 버리려고 정리하다가, 또 한 번 주춤하게 되었다. 혁명가이지만, 나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체 게바라의 책들 때문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 버리기로 마음먹은 후, 먼저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을 읽었다. 지금은 체 게바라 자서전>을 읽고 있는 중이다. 기억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내용의 글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세상을 보았던 모니터는 성경과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모니터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한 장의 사진을 본다고 하더라도 모니터의 크기가 다른 화면으로 본다면 서로가 그 간극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듯이, 어떤 모니터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영태리집] 버리기(2) - 장애관련 서적과 자료들

2023년도에는 겨자씨 40주년을 계기로 장애라는 화두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면 장애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버려야 한다. 우선 논문을 쓰기 위해 모아둔 자료파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A4용지 보고서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다 뽑아서 이면지로 활용하려고 한무더기 쌓아놓았다. 살아있는 동안 다 사용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대학원 다닐 때 공부했던 책들도 내 시야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버리려고 한다. 장애운동 현장에 있을 때까지 도움을 받은 책들이기도 하다.  책들과 자료들을 버린다고 장애에 대한 나의 상처와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놓아줄 때도 되었다. 함께 간다고 해서 도움될 일은 하나도 없다.

[영태리집] 버리기(1) - 요리책과 시집

올해는 ‘소유물의 1/3 버리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시작이 어렵다. 10년 전쯤에도 비우고 버리기를 목표로 삼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신적인 욕망들을 비워내는 것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사물들 특히 책이나 옷, 그 밖의 잡동사니를 버리고 비우려 한다. 가구나 의복과 살림 도구는 최소한으로 가능하게 남겨 놓을 것이다. 이 목표는 마지막 집으로 가기 위한 준비 중의 하나다. 마지막 집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나의 의지가 작용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집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의 집일 것이다. 공간이 넓으면 숨통이 트여 좋겠으나 현재 나의 경제 상황에 맞추려면 넓은 공간을 고집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1/3 버리기의 첫번째 타자(?)는 요리책!24살의 나이에 망원..

[행복주택] 행복주택 계약 완료

행복주택 계약 완료 행복주택 계약 기간은 5월 30일부터 오늘까지다. 나는 공고된 첫날 오전에 일찌감치 전자계약을 시도했다. 먼저 지정된 은행 계좌에 계약금을 보내고 나면, LH와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인증과정을 통해 국토교통부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으로 들어간다. 몇 가지 등록과 몇 번의 문자를 받아야 하는 과정을 거치면 부동산 임대차계약에 대한 확정일자 신고가 마무리된다. 다행히 이 과정도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제는 이런저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주신 거주지라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동호수도 이미 배정을 받았으니 앞으로 2년 정도 기다리며 작은 공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면 된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의 1/3 정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