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한지붕아래서 57

화려한 메뉴와 게임 한판

워홀에서 돌아온 도토리 덕분에 지난 주부터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아이스팩 가방에 자기가 잘하는 요리 재료들을 챙겨가지고 와서 우리집에서 요리를 한다. 요리하는 것이 즐겁단다.  첫번째 요리가 김밥이었다. 집에서 햇반과 김과 김밥재료를 골고루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서는 김밥 속에 들어갈 재료를 만들어 멋지게 김밥을 말았다. 자기 엄마아빠 줄 김밥은 따로 그릇에 담아 놓고, 나머지는 우리 둘이서 취향대로 골라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대만에서 워킹홀리데이 하는 동안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김밥만들기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김밥을 싸는 것도 능숙하게 잘하지만 규격에 맞추어 정갈하게 썰어내는 기술도 대단하다.  그 다음 메뉴는 새우 스파게티, 닭가슴살과 야채, 베이글과 냉면 한봉지 등..

SNS로 전하는 소식

오빠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30일 차 순례일지를 보내고 있고, 조카는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타이완에서 간간이 소식을 올리고 있다. 모두 SNS상으로 전하는 소식이지만 정성과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나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응원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웬만하면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떠한 형식으로든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수수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 같아 삶이 부요해진다.

설 명절 풍경

엄마의 여덟 번째 추도예배를 드린 후, 1세대 7명이 나란히 앉아서, 2세대 8명과 3세대 2명의 세배를 받고 있는 풍경이다. 코로나 3년 만에 형제들이 다 모였다. 그 사이에 가족이 커졌다. 조카 손주 2명이 태어났고, 한 달 후에는 1명이 더 태어날 예정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오빠네 집에서 모인 가족 모임 중에서 가장 많은 식구가 모인 설 명절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지 한 돌과 세 돌이 지난 조카 손주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내기 힘들어 앙증맞은 손가락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다. 조카들이 어릴 때는 데리고 노는 것이 너무 재밌었는데, 이제는 힘에 겨워 손주들과 놀 수가 없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젊은 조카들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말과 해 주..

오빠의 기록물

오늘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오빠의 두 번째 책 의 출판기념예배에 참석하기 위한 서울행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대학동문인 늙은(?) 이모가 피아노 반주를 해 주셨고, 고등학교 동창들의 특송과 아마추어무선 활동과 연결된 어느 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오빠가 참석하는 교회의 부목사님의 축도가 있었다. 참석자 모두 오빠 나이와 엇비슷한 사람들인 것 같아보였다. 아니면 조금 젊거나 조금 늙은 초로(?)의 신사들이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평온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빠를 비롯해서 모두 잘 늙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보였고, 분위기에서 점잖은 격식이 느껴졌다. 물론 우리 형제들도 모두 참석했고, 함께 늙어가는 삼촌과 이모 가족들도 오셨다. 외가댁식구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훤히 알고 있는 몇 안 ..

세배

이번 설에는 오빠집에 가지 못했다. 위장장애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엄마의 추도예배도 참석하지 못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추도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고 설음식 먹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도 갈 수 없어서 미안했는데, 어제 오빠네가 조카부부와 손자를 데리고 우리집을 방문해 주셨다. 대접할 음식이 없어 중국집 음식을 시켰다. 물론 나는 한 입도 먹지 못했지만, 조카손주의 열정적인 재롱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앤돌핀이 솟아 기분이 좋아졌다. 두 돌이 지난 조카손주는 왕성한 에너지로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호기심을 불태우고, 다칠세라 그 뒤를 쫓아다니는 젊은 아빠의 불안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장조카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그 때..

나도 카네이션을..

며칠 전에... 교회 목자님이 카네이션 꽃병과 여러 가지 선물을 들고 우리 집에 오셨더랬다. 마음이 참 예쁜 권사님이시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조금 흘려보내는 것뿐이란다. 가족이 되어주겠다는 한편의 설교에 이끌리어 운정교회에 등록을 했는데, 어떤 손길을 통해서든지 지켜지는 것 같아 나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빨간 카네이션 두 송이를 요기조기 돌려가며 혼자 사진찍기 놀이를 했다. 꽃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 준다. 어제는... 도토리가 ‘3+1’이라는 말로 점심 식사에 나를 초대했다. 자기네 세 식구와 나를 묶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다. ㅎ..ㅎ.. 헤이리에 가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선물도 받았다. 예쁜 다육도 사주겠다고 하는데, 평소에 필요했던 작은 국자..

설연휴

명절 때가 되면 혼자 맞이해야 하는 시간이 버겁게 느껴져서 마음이 스산해진다. 늙어서 그런 것 같다. 연휴 첫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지냈다. 5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는 방역 조치에 따르겠다는 핑계로 오빠집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방역지침에 따라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핑계였고, 그 이면에는 행동이 자유롭지 않은 비혼 독거노인의 뒤틀린 심사가 숨어있었다. 아무에게라도 배려를 받고 싶은 심정이 있었다. 드러나는 이유만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오빠에게 투정 한번 부려보았는데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가장 저항이 적을 것 같은 그럴듯한 핑계 하나를 앞세웠더니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