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Basecamp/Note

예수묵상 / 한완상

truehjh 2008. 12. 23. 18:44

 

한완상의 예수 묵상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신화화된 그리스도는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교리로 박제된 예수는 교회 쇼윈도에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 갈릴리의 예수, 나사렛 예수는 거기에 없다."


통렬한 회개이자 자기비판이다.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의 목소리이기에 울림은 더 크다. 비장하고 고독한 그의 외침에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절절이 배어 있다. 2천여 년 전, 텅 빈 황야에 메아리져간 예수의 목소리가 그러했을까?


한완상 전 부총리 - 그는 시대를 관통해온 학자이자 지식인이기에 앞서 독실한 종교인이다. 모태신앙을 갖게 된 사연도 자별하다. 큰 화상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어머니는 임신 여섯 달째의 뱃속 아이를 살려주기만 한다면 기독교 신자가 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그는 구사일생으로 태어나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고, 이날 이때까지 독실한 신앙인의 길을 오롯하게 걸어오고 있다.


그토록 소중하게 얻은 목숨이어서인지 그에겐 두려움이 없는 듯했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에 '지식인과 허위의식', '민중과 지식인' 등을 저서로 어둠의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고자 했고, 1980년에는 난데없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의 질병을 고치는 게 꿈이었던 이 '소셜 닥터(사회 의사)'는 격랑과 타협하며 이리저리 파도 타기를 하지 않고, 초지일관의 정신으로 파도를 쫙 가르며 곧게 나아갔다.


이런 그가 지금 큰 목소리로 궤도를 벗어난 한국교회를 질타하고 있다. 누구보다 깊은 충정과 고뇌로 위기의 한국개신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바로 알고 그 예수의 길을 걷자며 힘주어 외치고 있다. 저서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통해서다.


외침의 핵심은 책의 제목처럼 실종된 예수를 다시 찾아 그가 졌던 십자가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 정신을 실천하자는 거다. 믿음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신행합일(信行合一)이요 신언일치(信言一致)라고 하겠다.


사실 한국교회는 초대형건물들이 웅변하듯이 그동안 양적 팽창 일변도로 내달려왔다. 외형상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초대형교회들이 바로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근본주의 교리와 신조의 틀에 갇혀 예수의 본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역사적 예수는 사라진 채 부활 후의 그리스도만이 전부인양 여겨지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터져 나왔다.


한완상은 "한국의 기독교를 '개독교'라 폄하하고 개신교 성직자를 '먹사'로 희화화하는 현실을 보고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한다"며 부끄러움을 망설임없이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역행하는 교회가 불러일으킨 자업자득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한 마디로 한국의 교회와 교인의 삶에 예수가 없다는 얘기다.


예수의 체취와 숨결, 꿈, 정열, 의분, 다정함이 사라진 자리엔 승리주의, 물량주의, 배타주의와 같은 뒤틀어진 가치관과 행태가 자리했다고 그는 분석한다. 마땅히 이웃종교로서 존중해야 할 타 종교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서슴지 않고, 자기는 절대로 선하고 옳지만 상대방은 항상 악하다는 근본주의적 독단과 광신이 심각한 위기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교회는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속옷에다 냉전 근본주의 신념이라는 겉옷까지 덧입고 있다며 탄식한다. 민족 분단 상황에서 냉전 근본주의자들에게 더욱 투철한 독선적 확신을 갖게 한 게 바로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그들에겐 '원수를 사랑하라'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이 가장 불편한 메시지가 됐다"고 덧붙인다.


그가 믿고 따르는 예수는 독선과 배타, 오만의 울타리에 갇힌 예수가 결코 아니다. 사랑과 관용의 예수요, 나를 비워 남을 채워주는 비움의 예수다. 우아하고 멋진 골고다의 패배를 선택함으로써 마침내 부활의 평화와 참승리에 이른 예수다. 그 갈릴리의 예수, 역사의 예수, 민중의 예수, 해방자의 예수를 진정으로 모시기 위해선 그 삶을 따르며 살자고 권면한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여느 해처럼 신자들은 이날 더욱 깊은 신심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고 그 참뜻을 되새길 것이다. 때마침 나온 한완상의 외침은 성탄의 의미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한국교회가 다시 태어나자는 절규나 다름없어 더욱 눈길을 끈다. 그것은 예수와 교회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표시이기도 하다.


'예수믿으미'를 넘어 '예수따르미'가 되자고 역설하는 그의 말 중 깊은 울림을 던지는 또하나의 메시지는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다. 십자가를 지는 자와 십자가를 앞세우는 자는 너무나 다르다는 거다. 십자가 지기는 자기비움과 희생이나, 십자가 앞세우기는 자기탐욕과 독선을 채우는 '짓거리'라고 질타한다. 그건 '십자가의 정신'과 '십자군의 정신'만큼 거리가 멀다. 뼈아픈 회개를 통해 예수를 잊고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예수 치매증'을 치유하자는 목소리 또한 통렬하게 다가온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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