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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us Aurelius] 명상록

truehjh 2009. 3. 29. 17:32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고전은 인류의 정신적 유산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정신의 소중한 양식이 된다.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의 고전의 하나로 널리 읽히고 있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이상으로 삼았으나 이 이상은 역사상 오직 한 번 실현된 적이 있다. 그것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던 시기다. 그는 대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다망한 공무에 종사하면서도, 후기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언제나 깊은 철학적 사색을 생명으로 삼고 살아왔다.

 

체계적인 철학 연구나 저술을 할 틈이 없었으나, 수시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회나 상념의 조각들을 단편적이나마 희랍어로 기록해두곤 했다. 그것이 오늘날 “명상록”, 또는 “자성록” 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바로 이 수기다. 때로는 국경에서, 때로는 멀리 북방 변경의 진중에서 기록되었으며, ‘자기 자신에게(ta eis eauton)’라는 원제가 말해주듯이, 본래 남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다. 전체의 구성이나 문장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난해한 여러 대목이 눈에 뜨인다. 또한 사본이 잘 보존되지 않아 텍스트 자체의 오류나 불투명한 문맥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책은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고대 정신의 가장 고귀한 윤리적 산물’로서 고금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것은 테에느의 말대로 이 책 속에 ‘세상에 태어난 자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영혼을 소유했던 자의 영혼’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는 기원후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아버지 안토니누스 웨루스와 어머니 도미티아 루키라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로마 총독, 집정관, 원로원 의원 등을 역임한 안토니누스 웨루스의 아들로 집정관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두 번이나 집정관을 지낸 루키우스 카틸리우스 세웨루스의 손녀였다. 마르크스가 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 후에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마르크스는 몸이 약하여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정교사에게서 공부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는 원래 성실하고 근엄하여 12세 때 이미 철학자들이 입는 거친 양털 옷을 걸치고 공부에 열중하는 한편 이른바 ‘희랍적인 훈련’을 받아 육신도 엄격히 절제했다.

 

마르쿠스는 처음에 문학, 음악, 무용, 회화 등을 공부했으나 이윽고 철학에 이끌려 이에 전념하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세상을 떠나고 그 유지에 따라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후계자로 즉위하고 마르쿠스와 루키우스 웨루스가 안토니누스의 양자가 되었으나, 안토니누스는 마르쿠스를 자기의 후계자로 공표했다. 마르쿠스는 26세 때 안토니누스의 딸 파우스티나와 결혼하고 양부 안토니누스를 도와 국정에 참여했다.

기원후 161년에 안토니누스가 세상을 떠나자 원로원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후계자로 맞아들이려고 했으나, 마르쿠스는 선제 하드리아누스의 유지를 존중하여 의제인 루키우스 웨루스를 자기와 동등한 지위로 끌어올려 두 사람이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의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의 표시로 자기의 큰딸 루킬라와 결혼하게 했다. 그런데 루키우스는 나태하고 향락을 즐겨, 황제가 되어서도 국정을 돌아보지 않고 막중한 책임을 소홀히 했다. 마르쿠스는 인정을 실시하였고 그것에 의해 만인의 경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사후 1세기 동안은 많은 가정에서 그를 집안의 수호신으로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