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14) 영혼... 그리고 사라진 아버지의 나비

truehjh 2011. 10. 1. 16:20

1998.11.01. 영혼... 그리고 사라진 아버지의 나비


11월의 둥근 달은 유난히 아름답다. 음력 9월 보름인가 보다.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드니 정면으로 달이 보인다. 눈앞에 달이 떠 있는 것이다. 그 달 아래는 아름다운 가을 단풍 산이 바치고 서 있지만 어둠 때문에 그 정겨움을 느낄 수는 없다. 유리창 밖 컴컴해진 대지 위에서 고고히 떠올라 굵은 나무 가지 사이에 걸쳐있는 만월의 창백한 여유가 나를 부른다. 

부드럽고 충만된 느낌의 달이 아니고, 하얗게 퍼지는 허무함의 아름다움.

무엇인가 다 주고 난 뒤의 적막함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달이다.

아버지 얼굴 같이 하얗다. 더 이상 포근하지 않은 하얀 색이다.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온전한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에게 의존되어 있던 모든 가치관과 삶의 방법들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러한 그리움 뒤켠에는 극심한 고독감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의견을 같이 할 수 있고, 비슷한 감정으로 가치의 기준을 견주어 볼 만한 존재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절대의 고독감이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아버지....

죽음으로 하여 인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가.

아니 자신 외에 모든 것을 남겨 놓는 것인가.

그래서 그분이 존재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디에... 무엇으로...

나의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인간.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한 한 사람. 존재! 이제는 없는 비존재! 그리고 나비... 사라진 아버지의 나비.


며칠 전에 우연히 신문에서 나비와 영혼에 관한 글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푸쉬케라는 단어는 나비와 영혼의 뜻을 가지고 있는 동음이의어란다.

아버지가 누워계실 때 약국에 날아 들어온 나비.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라진 나비.

아직도 나는 그 나비의 실체를 의심한다.


나는 이제 아버지의 일기를 정리하려 한다.

스무살의 청년이었을 때부터 써 놓으신 일기를 정리하면서 그 기호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객관적인 한 인간을 만나려고 한다. 육친의 아버지를 제3의 사람으로 객관화시키면서 새로운 한 인간을 발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면서 아버지와 분리된 나 자신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로 완벽하게 돌아와서, 아버지의 삶을 사랑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익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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