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13) 남은 반쪽

truehjh 2011. 9. 26. 00:08

남은 반쪽


그 이후 우리 모두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엄마는 달랐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방에서 며칠 동안 비몽사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거의 가사상태 같다고 올케언니가 말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이루고 싸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길들여지지 않은 엄마가 어떻게 홀로 삶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것 같은 육체의 연약함이 그녀의 온 삶을 지배해 왔고 약한 육신으로 인해 정신력 또한 강하지 못해 어린아이 같은 어머니였다. 큰 일이 닥치면 언제나 감당하기 어려워 앓아눕곤 했고, 일들을 해결하느라 정신없는 주위 사람들에게 누워있는 것 때문에 걱정을 끼치곤 했다. 이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떻게 그녀 홀로 남편의 죽음을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죽음과 같은 혼돈 속에서 헤매고 계시리라.


퇴근길에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왔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함께 쓰던 방을 당분간 떠나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 모두는 엄마를 아기같이 돌보았다. 죽도 먹여드려야 했고, 여러 가지 위로의 말과 자장가 같은 말로 잠도 재워 드려야했다. 약도 먹여드리고 영양주사도 맞혀드렸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애...”

남편을 묻고 온 후 거의 일주일 만에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한마디다.


남편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는데도 다시 살아날 것 같다며 흰 천을 얼굴에 덮는 것을 반대한 아내다. 철저하게 보호받으며 50년 가까이 살아온 여인. 결혼하여 30여 년은 숨죽이고 살다가 남편이 병든 후에는 큰 소리 좀 치면서 살려던 여인. 자신의 실체를 내세우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남편에게 길들여져 살아온 여인. 소리 내어 우는 것조차 남편의 통제 하에 있어서 눈물을 흘린 기억이 별로 없는 삶이었다.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린 것 같애...”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말이었다.


오랜 잠 속에서 깨어나듯 엄마는 차츰 기운을 회복해 가셨다.

아주 가끔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이 아프실 때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는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는 순한 양 같았다고 아버지를 회상하셨다. 엄마의 회상은 단편적이었지만 표현 없는 그 분의 성격상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일 것이다.


며칠 후 막내에게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시더니 그 다음날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셨다. 이제 홀로 설 수 있을 것 같아서였을까. 엄마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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