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시니어 형제들과의 태국 여행

truehjh 2023. 9. 23. 20:19

시니어 형제들과의 태국 여행

 

이번 여름에는 형제들과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46일 일정의 멋진 여행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티스토리에 여행기도 올렸다. 여행기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진정으로 여행을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블로그에 다 올리지 못한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추억은 간직하는 사람에게만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위에 나타나는 갖가지 표정들을 보면 그 한순간의 즐거웠던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나이가 더 들어서 여행할 수 없게 되면 블로그에 남긴 여행기들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카메라의 발전으로 손쉽게 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태국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20년 전에 친구 평화, 작은올케와 도토리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태국 선교사님 또는 선교팀과 함께 태국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여행이었다. 두 번째는 7년 전에 의료선교팀과 함께 다녀온 선교여행이었다. 이번에 형제들과 다녀온 여행은 세 번째인데, 구성원은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그리고 나의 룸메인 조카 도토리까지 총 8명이었다. 20대의 젊은 도토리 덕분에 참가인원의 평균나이가 60대 초반에 머무른 노년팀이었다. 그러나 비교적 문제 해결 능력이 큰 리더들로 구성되어 있어 큰 걱정 없이 다녀왔다. 사실 나이들도 있고 하니 체력에 맞추어 편하게 다녀오자고 처음부터 계획하긴 했었다.

 

우리 형제들은 각자를 따로 놓고 보면 개성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모이면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원팀이 된다. 그것이 참 신기할 정도다. 이번 여행에서도 누구 하나 뒤틀리는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 없었고, 감정을 배설하는 말들은 다 접어두고 물 흐르는 듯이 부담 없는 대화로 이어가서 즐거웠다. 버스 속에서는 부모님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틈나는 대로 찬송을 불렀다. 혼성중창단이 된듯한 기분으로 노래 부르며 다니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했다. 특히 나는 도토리와 가족의 보살핌(?) 덕분에 완벽에 가까운 편한 여행을 했다. 단지 멀미로 인해 잘 먹지 못하고 다니는 것이 스트레스였을 뿐이다.

 

이런 형식의 여행, 그리고 이번 여행의 구성원들로는 어쩌면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또 어떤 기회가 있을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지금의 내 건강상태로라면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 베트남을 함께 여행할 때도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은데, 우리 중에 가장 연장자인 오빠는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힘들어, 나이 들었어, 못 해 등의 부정적인 이야기는 줄이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고 이웃에게도 좋단다. 작은 희망과 짧은 계획이 있어야 마음이 병들지 않고 건강한 노년을 살아갈 수 있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우려 대신에 가까운 미래를 또다시 상상하고 계획하는 태도가 노후의 삶에서는 절실히 필요하다.

 

총체적으로 나의 상태를 분석해보면, 걷는 것은 아직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긴 했지만, 보조기 윗부분의 피부가 벗겨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루에 만 보 이상 걸은 날도 있었는데 별로 쥐가 나지 않았다. 발 마사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하루에 만 보를 걸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고 자신감이 생겼다. 걸을 수 있음을 증명한 것 같이 느껴져 엄청 고무된 상태가 되었다. 허리 통증과 그 원인으로 인한 다리 저림 증세가 문제지만 진통제로 견딜 수 있다. 비행기에서 앉아있는 시간도 4시간 정도는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멀미가 문제다. 멀미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컨디션을 조정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형제들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느낀 점은, 이제 더 이상 형제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각자의 인생을 책임지며 잘살고 있으므로 내가 애타게 걱정할 일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만 드리면 될 것 같다이제는 나를 위한 기도가 더 필요할 때임이 확실해졌다. 이런 마음은 어쩌면 내 깊은 무의식 속에 엉켜있는 의존심을 덜어낼 때가 된 것이라는 깨우침일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독립적인 것 같아보이는 내 모습은 절묘하게 의존심을 포장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드러나지 않은 그 의존심은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의 현실과 맞물려 있는 것이리라. 

 

나의 여행은 이제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을 따라나서는 이유는 새로운 상황을 접하면서 친밀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누리고 싶은 욕구 그것 하나인 것 같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멋진 여행이 준비되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다니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 함께 하는 사람들과 속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행,  새로운 것을 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여행,  그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여행, 멀미 걱정 없이 음식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여행, 나는 아직도 눈을 반짝이면서 이런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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