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시니어시대(2020~)

노인이라는 정체성

truehjh 2023. 6. 10. 12:29

노인이라는 정체성

 

내가 성숙한 어른으로 살겠다는 이성적 선택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신은 없다. 칠순을 향해 가는 나이가 짐스러운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내 나이 또래 타인의 모습에 투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관심이 늘어나는 나이여야 하는데, 점점 나 자신의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는 나이로 살아가는 것 같다. 자신 이외에는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나이로 사는 것 같아서, 나의 삶이 이래도 되는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타인의 삶이 부럽다거나 타인의 삶과 비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자족하는 삶으로 70대를 살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간단하고 포괄적인 해결책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노년의 삶이 꼭 그렇게 지루한 것만은 아니다. , 영화, 음악, 역사와 문화 여행 등 지식과 흥미를 갖춘 프로그램 등 너무나 즐길 거리가 많다. 선택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널부러져 있는 재밋거리들이 이미 존재한다. 옛날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이 들면 추억하며 사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젊은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성공과 실패와 좌절의 경험까지도 추억하며 즐길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셨다. 맞다. 경험한 사실을 통해 의미를 돌아보는 시기여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노인으로 살아가는 삶도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예전의 나와 화해하고, 후회하는 일들을 정리하고, 과거를 돌아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계속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노년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년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존 근육을 만들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아있는 생존근육은 어떤 형태일까. 그것은 곧 남을 돕는 일이다. 노인의 시기에 삶에 대한 최고의 내적 동기는 봉사와 기여라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것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열매 맺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러 갈래의 길을 헤매면서 변화를 모색하며 살았으나 마음에 흡족한 변화 없이 노인이 되었다. 나를 지키며 꿋꿋하게 살아오는 것만도 벅찼다. 하지만 유약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이러한 경험이 나의 생존 근육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노년을 보내야 한다. 그럴 때 어른이라는 노인 정체성을 확립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Now) 여기(Here)에서 나로 살고 있다. 그 이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의 객관적 평가는 이제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만족을 느끼고 감사하며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리감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지금의 내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남은 인생을 나다움이 아닌 바로 나로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가난하든 부자든, 건강하든 병약하든, 집이 있든 없든, 그것으로 자족하며 감사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노년의 삶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더 이상 아무것도 꿈꾸지 않아도 되고, 기대하지 않아도 되고, 모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허망한 꿈에서 벗어나서 단순하고 가벼운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자기 암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안에서 나를 구현하며 살아가겠노라는 나와의 약속이다. 아이로 회귀하는 노년을 살고 싶지는 않다. 육체의 고통이 힘겹지만 지나간 시간, 지나간 경험 속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노년의 삶에서 궁극의 목표다. 그러나 늙음이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고, 노인이라는 단어 역시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