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한지붕아래서

도토리의 이삿짐

truehjh 2018. 3. 1. 17:26


지나간 시간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보다는 모든 조건이 좋아진 환경 속에서, 많은 것들이 갖춰진 환경 속에서, 아쉬움이 없을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한 달 전쯤 도토리의 고등학교 졸업식장 풍경을 보고 마음속으로 느꼈던 생각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무능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지도 못하며, 만족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헷갈린다. 자신에게 풍요하게 주어진 것들을 활용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오히려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부요 속의 빈곤이라고 하였던가. 아이들을 보는 시각의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서라도 도토리는 웃는 표정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 차원에서 말이다. 요즘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기는 어렵다. 아이들 표정이 모두 무표정이다. 사람을 보고도 웃지 않는다. 인사는커녕 외면하는 추세다. 자기들끼리는 웃고 떠드는지는 몰라도 외부인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라는 공동체적인 개념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나 그리고 나 또 나... 그 이외는 없는 것 같다. 미래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우리라는 개념이 강해지면 잘 지내는 거고, 나라는 개념이 강해지면 못 지내는 거라고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할만한 자신이 없다.

 

오늘 도토리는 학교 근처에 자리 잡은 자취방으로 간다. 자취방이라고는 하지만 부대시설이 다 갖추어진 괜찮은 집인 것 같다. 그곳으로 가지고 갈 짐 보따리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는데 도토리 아빠의 차에 싣고 조금 후 떠날 예정이다. 그녀는 혼자 사는 삶의 무게를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혼자 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불이익을 겪는지 아는 나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저 녀석의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까. 이삿짐을 옮길 때도 지금은 부모가 있으니까 별 문제가 아니지만 혼자 해결하려면 이삿짐센터 사람들에게 조차 내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아직 법적으로 성년이 아니라서 도토리를 보내는 어른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마지막 짐을 가지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손을 꼭 붙잡고 축복기도를 했다. 할 말은 너무너무 많았지만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맘껏 축복해 주고 싶은데 괜히 눈물이 난다. ‘하나님 주영이의 앞길을 축복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