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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도토리선생님 - 잠시의 멈춤

truehjh 2017. 12. 14. 16:37

잠시의 멈춤

 

2018년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일의 카운트가 시작된 후부터 도토리와 도토리 엄마의 마음은 더욱 분주해졌다. 학교나 사설기관에서 대학입시전략 컨설팅을 한다고 하고, 여기저기서 입시제도에 관한 강좌가 열린다고 하니,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져서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에 대학 입학시험을 치렀던 사람으로서는 지금 현 입시제도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조차 벅찰 지경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토리의 대학입시와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 하지만 정작 물어보기를 꺼린다. 입시제도가 다양하고 결과가 불확실한 상태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대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학생부 교과 전형, 학생부 종합 전형, 논술 위주, 실기 위주 등 여러 종류의 대학 입시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수능시험 성적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도토리뿐 아니라 모든 수험생과 부모들의 긴장이 극도에 다다라 있던 대학수능시험 바로 전날이었다. 그날 오후 아무도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포항 근처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포항 부근에 사는 수험생들의 상황이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부는 심사숙고 끝에 수능 1주일 연기라는 대책을 발표했다. 물론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고, 소수의 수험생들은 수능 연기의 원인 제공자라고 원망을 들어야 하는 기막힌 억울함을 겪게 되었다. 많은 수험생들은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수능일에 맞춰 관리하던 스케줄과 몸의 컨디션 때문에 허탈감을 느꼈고, 수험생들의 부모 역시 시험이 연기된 상황에 대하여 흥분한 상태로 이런저런 분석과 비평을 쏟아내어 놓았다.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미래의 사회진출과 복잡한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단지 시험으로 그칠 수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런 이해관계를 떠나서, ‘수능 연기라는 결정을 내린 우리 사회의 성숙도에 자부심을 느낀다.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배려하는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다수를 위한 논리로 모든 일들을 해결하는 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절대다수 또는 기득권의 편의와 힘에 좌지우지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던 우리에게는 일상적이지 않은 멈춤이다. 그 결정은 불평등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불공정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출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했다.

 

이러한 멈춤이 어떤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예기치 못했던 멈춤으로 인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황당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의견과 이익이 최고의 선이 아니라는 깨우침을 주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험의 연기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에게는 단지 추억의 한편으로 남아있게 될지도 모른다. 지옥의 일주일이었다는 감정만 남아있게 될지, 새로운 자기성찰의 밑거름으로 삼게 될지는 모두가 개인의 몫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계획과 목표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젊은 학생 시절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 리의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이 잠시의 멈춤이 보다 건강한 미래를 위한 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마구 달려가다가 브레이크 걸리는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그러한 훈련의 기회를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