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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도토리선생님 - 어른이 왜 그거를 모를까

truehjh 2007. 8. 28. 15:37

어른이 왜 그거를 모를까?


지난 크리스마스에 유치원생인 도토리가 받은 선물은 ‘공주님 옷’이었다. 예쁜 리본이 달리고 화려한 레이스로 꾸며진 주름 많은 원피스는 누가 보아도 꼬마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옷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만큼 공주과(?)에 속하는 옷답다는 것이다.

 

도토리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한 달 전부터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놓고 있었다. ‘산타할아버지, 저는 공주님 옷이 가지고 싶어요’라고. 12월 초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거실에 옮겨지자마자 도토리는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를 장식으로 달아 놓았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며 20여 일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눈을 뜨면 트리 아래 놓여 있을 선물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그녀의 엄마였다. 사랑하는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으리라. 24일 저녁이 되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미리 가져다 놓으셨다고 하며 도토리에게 커다란 선물 상자를 보여준 것이다. 잘 포장된 선물상자를 보는 순간부터 입이 귀에 걸칠 정도로 좋아하며 엄마와 함께 열어본 상자 속에는 그녀가 원하던 공주님 옷이 들어 있었다.

 

도토리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는 듯이 보였다.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한참 후에 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좋겠다. 예쁜 선물도 받고... 산타할아버지는 왜 도토리에게만 선물을 주실까? 나도 착한 일 많이 했는데... 왜 나에게는 안 주시는 걸까?” 아주 많이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더니 도토리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하는 말이 바로 “어른이 왜 그거를 모를까?”였다. 자신이 받은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오셔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택배로 주문한 것이란다. 그런데 어른인 고모가 왜 그 사실을 모르고 부러워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도토리는 선물을 받지 못해서 삐칠 것 같은 고모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또는 진실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참과 거짓은 무엇을 경계로 하고 있는가. 잠시 나는 곤혹스러웠다. 산타 할아버지가 주든지, 엄마 아빠가 주든지, 그녀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가 주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저 자신에게 선물이 주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마냥 행복한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의 크리스마스 아침에도 우리 4형제의 머리 위에는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가신 선물이 놓여 있곤 했었다. 막내가 태어나서 선물을 받으며 좋아할 때쯤이 되어서야 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얀 수염의 산타할아버지는 없다는 사실을... 잠자고 일어나면 머리 위에 놓여있던 과자봉지는 부모님이 가져다 놓으신 마음의 선물이라는 것을...

도토리의 말에 의하면 6살이 되기 전부터 자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단다. 그러나 도토리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가 또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고모는 도토리가 받은 선물을 진정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지 그녀의 즐거움을 위하여 짐짓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아니 고모도 역시 모른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후에 생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 도토리의 마음을... 도토리는 지금 진정으로 고모를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