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철없는 할머니의 명절맞이

truehjh 2023. 1. 20. 23:01

 

내일부터는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명절날이 다가오는 밤이면 늘 이렇게 싱숭생숭하다. 막연한 기다림과 외로움의 감정이 소리 없이 밀려왔다가 큰 숨 한 번 내뱉어야 빠져나간다. 명절을 즈음하여 이유 없이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여기며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거야라는 주문을 걸어 나를 토닥인다. 그리고 심심하고 무덤덤한 것이 인생이니 어쩌겠어. 그냥 그렇게 살면서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면 되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불투명한 뭔가가 남아있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낼모레면 칠십이 되는 나이인데도 이런 감정을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명절을 맞아 형제들, 조카들, 조카손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행복감이 넘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한 감정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하다. 외롭고 쓸쓸한 기분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나를 보면서, 아직 나는 나 자신으로 단단해지지 못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태도는 현재의 내 모습에 당당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 이웃과 부딪히지 않고 잘 지내려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아니면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가 보호 장벽을 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철없는 할머니가 될까 봐 미리부터 걱정하고 있는 내가 어이없다.

 

형제들은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가족 규모도 커지고 있으니까 명절을 맞이하는 태도가 그전과는 달라진 것 같다. 하긴 코로나19 때문에 명절의 가족 모임 대부분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긴 했다. 거의 3년간 방역을 핑계 삼아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모이는 일은 삼가는 분위기였다. 서로를 위해 잘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핵가족 시대에서 더욱 미세하게 분화하는 핵가족화 속도가 그로 인해 엄청 빨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직계 가족이 없는 나로서는 행동 범위가 더 줄어들었음을 표면으로 느끼고 있다. 특히 이번 설 명절 모임이 그렇다.

 

아직 학생인 조카와 어린 조카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예쁜 봉투에 넣어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예전에는 세배를 받으면 세뱃돈을 무조건 줬다. 조카들이 다 성장해서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건 말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공부를 다 마친 상황이든 아니든, 그들이 나에게 세배를 하면 기쁜 마음으로 세뱃돈을 주곤 했다. 그런데 손자까지 둔 다른 형제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성장한 조카들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나를 제지한다. 그 말을 따르기도 민망하고 내 맘대로 하기도 민망하다. 부모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홀로 사는 나는 어떤 기준으로 명절에 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도통 기준을 세울 수가 없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고민한다고 여기서 결론이 날 문제도 아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명절이나 가족 모임을 해야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의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명절에 임해야 이 싱숭생숭함이 덜해질까. 내 머리를 비우면 될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슴으로 만나면 될까. 가족이 만난다는 기쁨만 생각하면 될까. 명절을 맞을 때마다 안정되지 않은 내 감정을 삭여야 하는데,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끝이 날까. 아니, 끝난다기보다 나의 감정이 무덤덤해지는 때가 언제일까. 내 감정의 진로를 예측할 수가 없다. 명절에 관한 관심을 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못 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갈팡질팡한다.

 

머릿속으로만 복잡하게 명절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알기나 하는 듯, 친구들 카톡방에서는 설 명절 음식 사진이 계속 올라온다. 명절 음식 만들기 귀찮다고 하면서도 은근슬쩍 베테랑급 솜씨 자랑을 하고 있다. 찾아오는 자식들이 있고 손주들이 있기에 당연하게 준비하는 부모의 마음일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와 비교해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며칠 후 나도 오빠네 집으로 가야 하는데, 명절 음식 준비할 큰올케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하다. 또한, 명절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은 어떤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