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소울푸드와 소화력

truehjh 2022. 12. 10. 15:19

 

지난 10월 겨자씨 40주년 기념여행을 떠났다가 친구집 방문 겸 2주간을 제주도에 있었다. 여행 중 멀미로 시작해서 소화 안 된다는 말을 달고 살다가 돌아왔는데 집에서도 소화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소화불량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그렇게 비실비실 지내다 보니 소화는 되는 것 같은데, 며칠 전부터 머리가 띵하고 뭔가 헛헛했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야 할 때라는 시그널이라고 여기고, 막내동생이 보내준 LA갈비를 꺼내서 구워 먹었다. 소화가 안 되면 입맛을 잃고, 입맛을 잃으면 먹는 것이 점점 더 부실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나에게 LA갈비는 일종의 소울푸드다. 언제부터였는지를 굳이 따져본다면 벤츄라에서 김목사님이 구워준 LA갈비를 먹고 힘을 차린 후부터라고나 할까. 미국에서 약사시험 공부하면서 너무 힘들 때였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무렵에 맛있게 먹은 음식이어서 강렬한 인상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요즈음도 내가 허기졌을 때 생각나는 음식 중에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LA갈비도 구워 먹고, 밥도 맛있게 먹었으니, 기운을 내서 뭔가 시도할 거리를 찾아내야 하는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당분간 초조해하지 말고, 그냥 멍때리고 가만히 있으면서 먹는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나이가 드니 먹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실제로 필수적인 생필품을 따져보면, 먹을 양식 외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별로 없다. 먹는 즐거움이 커서가 아니라 생명 유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이든 부모님이 계실 때는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최근 들어 나에게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난 변화는 소화력의 약화다. 거의 올 한 해는 소화안됨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장의 문제로 가끔, 주기적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소식이어서 2~3년 전까지만 해도 소화가 안 되는 문제로 크게 고생한 적은 별로 없다. 그런데 작년 말 제주여행에서 멀미와 소화불량 상태를 심하게 겪은 후, 그때부터 계속해서 소화에 신경을 쓰며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위무력증이 지속되고 있다. 소음인 체질은 소화기관에 문제가 없으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데, 역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위가 무력해지는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거의 늘 혼자 먹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같이 먹으면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씹어먹게 되는데, 혼자 식사할 때는 챙겨놓은 최소한의 양이라도 다 먹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씹어 삼키곤 한다. 그것이 습관이 된 듯하다. 침의 분비량이 줄었거나 충분히 잘 씹어먹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의심도 든다. 움직임이 별로 없는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하고, 이동할 수 있는 근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근력과 이동에 연관된 걷기를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 보행의 장애보다 소화력의 약화가 더 신경이 쓰이는 시기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마음을 빠르게 늙음과 노쇠로 이끄는 요소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소화안됨'이라는 것이다. 소울푸드가 생각날 때 마음 놓고 찾아 먹을 수 있는 소화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건강에 신경 안 쓰고 할 일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지, 늙어서야 알 수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