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

장애인과 노인 사이

truehjh 2023. 4. 11. 17:48

장애인과 어른 노인 사이

 

겨자씨 40주년 행사준비를 마무리하며 장애 해방을 외치던 40년을 정리했다. 그리고 40년이라는 세월을 표지판 삼아 정체성의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과 노인이라는 정체성의 선택지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내가 장애인으로 살았다는 억울함을 벗어나지 못한 철없는 노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모든 편견에서 벗어난 성숙한 어른 노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갈등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하기에 안심이다. 즉 이전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쪽으로 떠밀려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값지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른이라는 노인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할 순간이 빨리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장애인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성숙한 어른 노인의 삶으로 들어와야 한다. 어른을 메타포로 사용해 노인의 삶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완성된 노인의 삶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는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방황하는 장애인으로 살아온 것처럼,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노인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늙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철이 없는 노인이 아니고, 늙음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어른 노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나의 시야는 좁아지고 있고, 온갖 호기심도 줄어들고 있다. 과연 이런 상태로 사는 것이 노인의 삶이라고 적당히 얼버무려도 되는 것일까.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한 상태인데, 일찍부터 친구들에게서 느껴졌던 무심함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 같다. 먹을 것 외에는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노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포기한듯한 눈빛 바로 그런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무관심의 느낌이랄까. 흥미가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타인의 감정에 대한 민감도 또는 공감도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아니면 무심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 이유는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과 내가 관여해도 타인에게 의미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관여할 힘과 능력이 없다는 증거일까.

 

또 하나, 최근에 생긴 감정의 변화는 무덤덤함이다. 거대한 톱니바퀴 구조물 속에 작은 톱니 하나같은 무력감이나 무존재감으로 그냥 굴러가고 있는 듯한 무덤덤함이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안개 같은 유한성과 있는데 없는 것 같고 없는 데 있는 것 같은 부조화와 시한부적인 감정의 엉킴 속에서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은 뒤로 두고 현실의 삶에 안도하려는 듯한 무덤덤함이다. 이러한 변화는 겨자씨 40주년을 계기로 장애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의도적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므로 거의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고통을, 무의식 속에서 견디며 재해석해 놓은 기억을, 인제 와서 진실이 아니라며 흔들어 놓을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노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러나 칠순을 앞에 놓고 있는 지금은 점점 그 소망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남아있는 힘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노화가, 나의 오랜 소망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리고 나에게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기회인지도 모른다. 괴테는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라고 말했지만, 상실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버리고 비워냄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삶이 될 것이다.

 

모든 장점을 동원해서 사람을 도우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지만, 욕심은 금물이다. 쓸모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그럴 나이는 아니다. 글 쓰고, 책 읽고, 토픽 가르치고, 평범한 하루를 사는 일상을 즐길 나이이다. 마음의 걱정이나 후회도 내려놓고 삶이 주는 소소한 기쁨, 삶에서 누리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 누리며 살아야 하는 나이이다. 욕심부리는 철없는 노인이 아니고 겸손한 어른 노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러한 다짐은 남은 삶을 방치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겠다는 표현이고, 지금 살아있음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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