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엄마와의시간여행

솜이불과 엄마

truehjh 2015. 12. 1. 19:08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를 듣고 오늘, 드디어, 이제야, 침대 이불을 바꿔 놓으면서 엄마가 돌아가신 해의 마지막 달 첫날을 보내고 있다. 작년 오늘 엄마는 내 방에 들어오셔서 침대에 걸터앉으시고는 오빠네 집에 한번 가보자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나는 오빠에게 들려주려고 엄마의 목소리를 핸폰에 녹음했다. 그 때 엄마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 드리지는 못했지만 녹음해 둔 엄마의 음성을 추억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엄마가 앉아 계시던 그 두꺼운 이불을 오늘 다시 꺼냈다. 겨울 날씨가 되면 가을에 덮던 솜이불을 좀 더 두꺼운 이불로 바꾸곤 한다. 해마다 엄마가 서둘러서 도와 주셨기 때문에 11월이 되면 두꺼운 솜이불이 내 침대에 올라가 있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혼자서 할 엄두가 나지 않아 11월을 넘기고 말았다.

 

엄마가 사용하던 긴 바늘로 이불 홑청에 타월을 꿰매면서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잘 정리하여 둔 솜이불을 꺼내 몇 시간 베란다에서 바람을 쏘인 후에, 전에 깨끗하게 빨아 두었던 호청을 씌워서 침대 위로 가져다 놓았다. 덮던 이불의 더러워진 홑청은 벗겨 빨아야 하고, 그 솜은 베란다 햇볕에 다시 널어놓고 말려야 한다. 이불솜이 무거워 혼자서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혼자서 낑낑 대며, 아니 엄마를 추억하며, 두꺼운 이불들을 정리했다. 솜이불에 홑청을 씌워서 잘 정리하는 일은 항상 엄마가 도와주시던 작업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는 늘 방을 먼저 쓸고 닦으셨다. 그리고 커다란 홑청을 펴놓으신 후에 나를 부르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격언을 확인하시듯 네 귀퉁이를 나와 나누어 잡고 팽팽하게 규격을 맞추어 올려놓으시곤 하셨다.

 

나는 앞으로도 이불을 꿰맬 때마다. 봄을 맞이할 때마다,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이불을 바꾸면서 엄마 생각을 하곤 할 것이다. 솜과 호청이 따로 겉돌지 않게 하시려고 끈을 달아 놓으신 솜씨를 기억할 것이다. 유난히 깔끔하셨던 엄마... 내가 하고 있는 소소한 일들을 추억하며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한편이 서럽기도 하지만... 내가 엄마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 내 마음 한편에 엄마의 일상이 기록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음을 깊이 있게 느끼게 된다. 책임감이 강하고 독립적이시던 엄마였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의 아우라에 눌려서 엄마가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렇게 사신 엄마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엄마가... 그런 엄마가 참 좋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느끼지 못했던 엄마의 장점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삶을 살아갈수록 더 깊게 느껴질 엄마의 강점인 것 같다.

 

아직 엄마의 옷들과 반짇고리 등을 치우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들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치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좀 더 오래 엄마의 체취를 느끼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아직 치우지 않은 이유다. 그대로 놔두고 있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엄마가 가슴 깊이 그리워진다.

 

이불이 너무 무거워서 내년에도 내가 혼자 할 수 있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는 없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을 엄마와 함께 했듯이 누구와 같이 이불을 맞들고 일 년에 몇 번씩 이불 정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 되리라.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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