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소화불량으로 심각하게 속앓이를 했다. 처음 며칠간은 물조차 넘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원인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그 상황 자체가 덜컹 겁이 나서, 고작 생각해낸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었다. 게을러서인지, 아니면 먼 나라 이야기 같아서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멀다고 느껴져서인지 지금까지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지난 열흘간 어지럼증으로 인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꿀물과 소금물을 마시며, 꼼짝도 할 수 없이 앓아누웠던 상황이 계기가 되었다. 물론 얼마 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가 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는 친구의 상황으로 다시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위기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고독사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였다. 아무도 주변에 없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어떻게 그 위기를 대면할 수 있을까.
죽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번에 맞닥뜨렸던 위기상황을 다시 복기해 보았다. 왜 소화가 안 되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앓았는지 원인을 모르겠다. 별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하여,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무심, 무감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난봄 동안에 정체된 기운 탓을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
하긴 겨울이 시작되는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너무 가라앉아 살았다. 마치 종말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수다 떨고 싶은 마음도 없고, 관심이 가는 사건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무위의 상태에서 시간은 쏜살같이 그냥 잘 지나갔다. 그리고 봄을 맞이했다. 봄기운에 온몸이 노곤노곤 하여지니 누울 자리만 보게 되었다.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계획이 없어서 권태로웠다. 그 권태가 허무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감정선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몸이 반항한 것이다. 정신 차리라고!
그래서 몇 끼 죽을 먹어 겨우 걸을 힘이 생기자마자 운전해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로 찾아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정은 간단했다.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호스피스 이용과 열람 공개까지 잘 작성한 후 싸인하고 나오면 된다. 별것도 아닌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이렇게 차일피일 미룬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해결했다. 오래도록 마치지 못한 숙제를 제출한 것 같아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몸도 정신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을 때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니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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