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는 교회 안에 있는 구락부이고, 선생님은 대학생들이고, 동급생은 언니 오빠들이다. 여자아이는 언니 오빠 선생님의 등에 업혀 교회 마당에서 뛰노는 체육 시간을 즐긴다. (1962년 10월) |
논산훈련소에 군목으로 계셨던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시던 선생님과 정든 유치원 친구들을 뒤로 하고, 우리 가족은 다시 서울의 남산 아래 해방촌으로 이사했습니다. 해방촌은 남산 밑에 있는 동네 이름입니다. 이북에서 피난민들이 내려와 남산 밑에 모여 둥지를 틀고 살던 동네라 이름도 해방촌이라고 불렀다지요. 자유를 찾아 이남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그곳에 정착해 병원과 교회를 세우고 살면서 어려운 피난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의사셨던 외조부께서 개원하신 은제의원도 끼어 있고, 아버지가 개척 맴버인 해방교회도 있습니다.
낯선 서울 집으로 이사한 시기는 국민학교 2학년 2학기였습니다.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제도권 안에 있는 학교로 전학해야 했지만, 집 가까운 곳에는 국민학교가 없었습니다. 그 동네 아이들은 모두 이태원에 있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5학년이던 오빠도 이태원국민학교로 전학을 했습니다. 잘 걷지 못하는 나는 이태원에 있는 학교가 너무 멀어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학령기에 배움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집 바로 옆에 있는 교회구락부에서 공부하도록 결정하셨습니다. 해방교회가 운영하는 구락부는 공부할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곳입니다. 그 당시는 나의 삼촌을 비롯해 젊은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주간반과 야간반의 형태로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남산 천막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공장에 나가서 일하느라고 공부를 제 때에 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부속 건물이 교실이었고, 교회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선생님이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이 학생이었습니다. 내가 다닌 학급은 국민학교 2학년 과정의 주간반입니다. 나보다 나이가 3~4살 많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20살이 넘거나 사춘기를 지낸 언니 오빠들도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언니와 오빠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나는 막내로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도권 안에 있는 지방 국민학교에서 1학년과 2학년 1학기까지 정규과정을 마친 나는, 나이 많은 동급생보다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일하면서 공부하는 그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이좋게 즐겁게 공부하며 지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상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구락부 연합회에서 개최하는 사생대회에 나가서도 몇 번의 상을 탔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 덕분에, 커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덟 살이었던 나는 그 반에서 제일 나이 어린 학생이어서 언니, 오빠들이 나의 책가방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급할 때는 업고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그중에 멀리서 나를 지켜보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도와주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그 소년은 우리 반 학생들 중에서는 아주 어린 편에 속했지만 용감하고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그 남자아이는 잘 웃지도 않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선생님들이 믿음직스러워하는 우리 반 반장입니다.
나는 언니들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정보를 많이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시고 그의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이 모두 나가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랍니다. 그리고 그가 수업을 끝내고는 우리 외할아버지 병원 앞을 지나서 남산으로 올라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남산 중턱 어딘가가 그의 집이었을 테지요.
나는 반장에 대한 궁금증이 커갔습니다. 그는 진짜로 공부가 하고 싶은 아이였고, 또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갔다가 중간에 공부하러 오고, 공부가 끝나면 다시 일하러 간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1살짜리 아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가 의아하지만, 그 시절에는 작은 공장에서 일하거나 신문 돌리는 일, 아이스케키 파는 일, 고물을 주워다가 파는 일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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