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06) 진정한 만남

truehjh 2011. 9. 16. 17:20

 

1998.10.07~. 진정한 만남


다시 흩어져 각자의 위치로 돌아온 식구들은 또다시 긴장의 시간을 맞고 있었다. 약국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나로써는 상상하고, 걱정하고,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하다가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 두 사람은 아버지 목회에 힘이 되어 주었던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의 양극적 성격의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버지를 찾을 기회를 만나지 못해 송구했을 이집사님의 마음과 멀리 미국에서 애태우고 있을 서장로님의 마음도 느껴진다. 그들에게도 아버지의 존재가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겨져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방문하였을 때 거의 자신들을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목사님이 아버지를 방문하고는 목사님께 침을 좀 맞게 해드리면 혹시 혀라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 놓았다. 나는 거부감을 느꼈다. 무엇에 대한 거부감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무언 중에도 너무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심을 우리 모두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여러 사람들이 전해주는 그런 류의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무 괴롭다.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 부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보는 견해 그리고 고통에 대한 이해는 각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현대의학이 판단을 내렸을 때, 고통을 전제하더라도 최첨단 과학기술로 생명을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 최선인가 아니면 자연적인 부르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최선인가. 인간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되어 진다. 안락사의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격렬한 논의가 거듭되지만 아직도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닌가. 다만 개인적인 견해만 있을 뿐이다.

오빠와 동생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 그리고 자신들의 확고하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많은 혼돈으로 흔들리고 있을까. 이 상황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신념뿐이다.


물 한 방울을 삼키지 못하는 고통 중에서도 아버지의 정신력은 대단했다.

흐트러짐이 없이 어느 한 곳으로 집중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막내가 아버지 침대 곁에서 시편 23편을 읽어드렸는데 그때 아버지는 왼손으로 그 성경책을 가지고 가셔서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계시더니 다시 옆구리에 끼고 계시더란다. 성경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목사님이다. 나는 막내의 말을 들으면서 지난번 꿈을 생각했다. 그 꿈에서는 아버지가 나에게 상의 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라 하지 않으셨던가.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책이 아니었을까. 몇 십 년을 몸에 지니고 다니시던 파란 표지의 작은 성경책... 한두 달 전 의정부에 오셨을 때도 상의 주머니에 성경책을 넣고 오셔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으셨던가. 아버지는 그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가시겠다는 것이 아닐까. 내 두뇌는 바쁘게 움직였다. 꿈, 주머니, 옆구리에 낀 성경책, 몇 십 년 가지고 다니시던 작은 성경책... 나에겐 그것이 유언으로만 느껴졌는데 비약된 논리들이겠지.


그 다음 주일날 오후 서둘러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갔다.

아버지는 물 한 방울 흡수하지 못한 채로 6일째를 맞이하고 계셨다. 몸은 작아질 대로 작아졌고, 얼굴은 파리해져 있었다. 나는 아버지 방안에 감도는 분위기를 가볍게 하고 싶어 농담 같은 말을 했다.

“아버지, 금식기도 40일째네요. 힘드셔도 마음을 평안히 가지세요... ”

딸꾹질하는 아버지 가슴을 쓸어드리며 말씀드렸다.

“아버지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이렇게 웃으세요. 이렇게 웃어 주세요...”

아버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께는 웃어 달라고 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약한 딸이었다. 아버지의 평화로운 영혼을 감지하고픈 나의 소원 때문이었다.

“아버지, 사랑해요...”

불쌍한 우리 아버지... 나는 그 순간 아버지의 눈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눈. 바로 그 눈이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아버지의 눈. 그윽한 눈. 사랑과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눈. 아버지의 눈길...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으로 자신의 딸인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셨다. 눈물고인 눈을 떨구셨다. 그리고 내가 잡은 손을 꽉 잡고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어떤 말을 나에게 해주고 싶으셨을까. 아니 무슨 말을 하고 계셨을까. 그 때.

내가 나의 죽음을 맞을 때까지 기다린다 해도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순간의 아버지 눈을 떠올리면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나는 그 날 아버지의 상의를 찾아보았다. 어느 웃옷 주머니에서 작은 성경책을 찾아 아버지 손에 쥐어 드렸다.


우리는 밤늦은 시간에 다 함께 모여 아버지 옆에서 찬송을 부르고 또 예배를 드렸다. 아버지도 함께 참여한 예배였다. 찬송할 때 소리를 내시려고 노력하셨고, 말씀을 들을 때는 얼굴을 마주하고 계셨다. 모두 인사를 하고 오빠집을 나왔다. 언제나 아버지를 뵙고 집으로 오는 길이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결국은 그 것이 나에겐 마지막이었지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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