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08) 마지막 날

truehjh 2011. 9. 18. 13:45

 

1998.10.14~. 마지막 날


비가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며 스산한 바람이 불던 날 새벽.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검정색 옷을 입은 우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영상 속에서 잠을 깨면서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르는 한 순간을 예감했다. 거의 밤마다 꿈을 꾸었지만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은 꿈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서는 전화가 없었고 나는 또 그곳으로 전화할 용기가 없어서 막내에게 전화로 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죽음의 그림자 한 끝을 잡고 나 혼자 있는 것은 공포였다. 두려움과 긴장과 허무감을 혼자 견디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이처럼 어려운 것임을 어느 때 더 깊이 느껴볼 수 있을까.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아버지 영혼의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위해 정신을 집중시켰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작은 성경책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계실까.

그냥 의식의 끝자락에서 평화로움을 느끼실까. 아니면 무의식일까.

고통도 그 곁에 맴돌고 있을까. 아니면 사라져 버렸을까.


그날 밤 10시에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혼자 약국 문 닫고 집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숨결이 고르지 않아 막내네 내외를 불렀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 지신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집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2시간쯤 후... 11시 55분. 아버지께서는 자신 옆에 있어야 할 식솔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있는 중에 마지막 호흡을 하셨다. 40여일 간의 투병생활을 고요한 얼굴로 마감하시는 순간이었다. 난 그 자리에 있지 못했다.


밤 12시가 넘어서 남동생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나를 데리러 오는 도중이니 아버지께 갈 준비하고 기다리라고만 했다. 나의 가슴은 쿵쿵 소리를 냈다. ‘아버지, 아버지...’ 거의 새벽 한시가 다 된 시간에 동생네는 나를 태우고 오빠 집이 아닌 삼성의료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것이다. 가셨다는 동생의 설명을 들었을 때 슬픈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올랐다.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은 아버지께 화가 나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처구니없는 소외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 다음에 또 하나의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이성적이 되라고 요구할 수 없는 감정의 극한 상황에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가슴 아프게 한 자식은 보지 않고 가신 아버지... 장애로 인해 불효고, 결혼하지 못해 불효였는데 임종도 못했으니 처음부터 불효는 끝까지 불효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응급실로 달려가는 동생의 차 속에서 느꼈던 분노와 배신감과 소외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슬픔의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들이었다는 것도 설명하기 힘들다.

왜 나만 그 상황에서 빠져 있어야 했는가.

왜 하나님은 그렇게 연출 하셨는가.


우리보다 늦게 앰브란스는 응급실 앞에 멈추었고 아버지의 시신이 그 속에 있었다.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는 동안 난 아버지의 발가락을 만져 보았다. 아직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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