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1-04) 날개 접는 나비

truehjh 2011. 9. 8. 23:33

 

1998.10.02-. 날개 접는 나비


아버지가 아프시기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가면서 모두에게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로 꺼내 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확실한데...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고 끝이기에 더욱 아득한 시간들이다. 엄마와 함께 큰올케, 작은 올케, 막내가 번갈아 가며 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남동생도 거의 매일 송내 아버지께 들렸다가 의정부로 돌아 왔다. 오빠도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약국 안에서의 나는 극도로 긴장되어 있어서 전화벨 소리에도 놀라곤 했다. 아버지에 관한 어떤 소식이라도 들려 올 것 같은 초조감, 긴장감, 아니 그 보다 어떤 막연한 두려움, 안타까움... 차라리 약국 문을 닫고 아버지 옆에 가서 간호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 젖어 있을 때 약국 안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 왔다.

약국 천장을 따라 몇 바퀴 배회하더니 약장 위에 앉아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조금 후에는 내 두 눈의 시선이 모이는 곳 바로 조제대 두 번째의 칸 끝에 놓인 게라논 병에 앉았다. 약품 설명서를 병에 고정시키기 위해 끼워 놓았던 노란 고무줄을 붙잡고 살포시 앉은 것이다. 호랑나비 같이 화려하지도 않고, 나방같이 투박하지도 않은 커다란 나비다. ‘왜 이 가을에 나비가 피곤한 모습으로 약국 안으로 날아 들어왔단 말인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하루 종일 내 두 눈의 시선이 머무는 바로 저 곳에 저렇게 신기하게 앉아 있단 말인가!’

아버지의 영혼이 내 곁으로 날아 온 것만 같아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며 간구하는 나를 위로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인가. 이렇게 엉뚱한 짐작도 해 보았다. 나는 나비를 쫒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었다. 나비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날아가고 싶으면 날아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그 다음날도 나비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 자리에 매달려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막내에게 전화를 해서 나비 이야기를 했다. 날려 보내지도 못하겠고 잡지도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막내는 작게 웃었다.

그 나비는 너무 피곤한 모습이었다. 날개의 색깔도 퇴색되어 빛을 잃었고, 윤기도 사라져 거칠어 보이는 상태였다. 암갈색 또는 검은 색에 붉은 기운이 돌며 보통나비의 2-3배 되는 크기 때문에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삶의 의무를 다 마치고 영원한 안식을 찾는 깊은 몸짓으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면 그것은 너무 과장된 감정적 표현일까.

날개를 접고 가느다란 발 몇 개로 고무줄 위에 앉아있는 모습은 정말 우울하지만 엄숙한 영혼의 모습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버지도 저렇게 쇠잔한 모습으로 누워 계시겠지.

무슨 생각을 하시며, 무엇을 느끼시며, 힘겨운 생명을 붙잡고 계실까.

그리고 저 빛바랜 나비.. 생명이 꺼져버린 듯한 나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그러나 내가 꿈속에서 만나는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처럼 아버지는 설교를 하고 계셨고, 또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으시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기도 했다. 어느 날 꿈속의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도 하셨다. 양복 상의 주머니를 만지며 무엇인가 찾아보라고도 하셨다.

나는 모든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영혼을 부탁합니다. 그 분의 영혼을 평화롭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중얼거리며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없이 중얼거리며 잠을 설쳤다. 그렇게나마 아버지의 약한 영혼에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가는 동안 아버지의 상태는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아마도 세 번째 코줄을 뽑으시는 시도와 함께 소변줄까지 뽑아버리신 이유일 것 같았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아침이었고 즉시 병원으로 연락해서 다시 끼워 드렸지만 소변줄 뽑는 방법을 모르고 뽑아내셨으니 심한 출혈이 있었고 굉장한 통증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셔서 검은 위액을 토해 내기도 하셨고 변까지 검은 색으로 변해 버렸다. 그 다음날은 굉장히 심한 악취가 온 방안에 가득했다가 몇 시간 만에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손쓸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었다.

죽음을 느끼는 자신이나 주위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이보다 더 큰 고문이 어디 있을까. 죽음을 향해 가는 순간 순간이 고통이다. 살아있음 역시 고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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