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스크랩] (대학정립단) 명절과 보조기...!!!

truehjh 2006. 10. 10. 17:41
결혼한 여자나 남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명절 스트레스가 있다고 하지만
씽글들도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부부단위로 진행되는 가족행사인 명절에 씽글로 끼어들기란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왕따 당하는 것이 자명한 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일찌감치 끼어들기를 포기하고 만다.
일복 터진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몸도 부실한 씽글 시누이가 참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만 명절이 두려울 뿐이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오래간만에 우리 네 남매들과 그 식솔들이 다 함께 여행을 떠났다.
부산에서, 파주에서, 부천에서, 따로따로 강원도 속초에 있는 콘도에 모였다.
그런데 백담사를 가자는 오빠의 의견이 나를 잠시 주저하게 만들었다.
백담사는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찰 중에 하나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혼자 놀고 있겠다고 하니 늙은(?) 우리 오빠 하는 말이 업고라도 가겠단다.
하긴, 보조기를 착용하기 전에 나는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아버지 등에 업혀 가고, 오빠가 좀 커서는 오빠 등에 업혀서 다녔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중간 중간 오빠가 업고 가고, 남동생은 책가방 짐을 들고 따라 다니곤 했다.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내가 있어서 남자 형제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여 울기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바로 밑의 그 남동생은 지금도 내 온갖 짐을 다 챙기고 살아가고 있다.
아예 자기 집의 방 하나를 내주고서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리 수술을 받고 허리까지 오는 보조기를 신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보조기를 착용하고부터 나는 아버지와 오빠와 남동생으로부터 독립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서고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어린 나이에 독립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 보조기에게 감사한다.
독립된 나로 걸어 다닐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다시 의존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다.
가정을 이루어 한 인간으로의 독립된 삶을 꾸려가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동생에게 온갖 짐을 다 맡기고 살고 있으니... ㅋ ㅋ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백담사까지 올라가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타러 가려면 400미터 이상을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기다란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었다.
셔틀버스 두 대가 빗겨가도록 되어있는 포인트를 제외하고는
한 대가 겨우 다니는 협착한 길로 달려 올라 갔지만 그런대로 운치 있는 산행이었다.
백담사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긴 다리 건너 차분히 내려앉아 있는 사찰이 아름다웠다.
하산할 때는 다른 식구들은 걸어서 내려가고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하차한 곳으로부터 다시 주차장까지 만만치 않은 거리를 끌리는 다리로 옮기며...
백담사에서 본 한용운의 시를 음미해 보았다.

* *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 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 *




출처 : 대학정립단
글쓴이 : 한정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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