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기입장
한 달에 한 번 도토리에게 용돈을 주는 날에는 금전출납부를 검사한다. 금전출납부는 용돈기입장이고, 거기에 적혀있는 남은 돈과 그녀가 가지고 있는 현금의 액수가 맞아야 다음 달의 용돈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달에 도토리가 가지고 온 용돈기입장을 열어보니 지출을 적는 곳에 ‘미스테리하게 1,200원 사라짐’이라는 문구가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었다. 계산상 남아있어야 할 잔액과 실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가 맞지 않아서 그렇게 처리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나는 이 상황에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가 잠깐 난감해져서 웃고 말았다.
출처가 확실한 수입 내용은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에게서 받은 돈이고, 누구에게 받았는지 모를 때는 ‘누가 주심’이라고 적혀있다. ‘알바, 흰머리 뽑기’ 등의 내용도 있다. 아빠의 흰 머리카락 뽑기가 알바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아르바이트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아이스크림, 핫도그, 오뎅, 호떡, 맛난 것, 딱지, 연필, 스티커, 게임, 헌금, 생신선물’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초등학교 1, 2학년의 사용처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가끔 ‘쓴 돈, 생각 안남, 잃어버림, 모름, 엄마가 다 써버림, 무언가에 씀’이라고도 쓰여 있다. 매일 기록하지 않고 검사받는 날에 즉 용돈을 받는 날에 급조했음을 알 수 있다. 남은 돈에 맞추어 정리하여 가지고 온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정확한 장부정리를 요구한 내가 과욕을 부렸나 싶어 숫자 맞춘 것을 칭찬해 주고는 그달 그달의 용돈을 손에 쥐어 주곤 했다.
이러한 월례행사가 1학년부터 4학년 초까지는 지켜졌다. 그 후로는 용돈기입장을 검사하지 않고 정해진 액수를 은행계좌로 보내 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녀가 어떻게 경제생활을 하는가에 대해서 고모인 내가 자세히 알 수가 없었고, 책을 사거나 그밖에 필요한 돈은 엄마의 카드로 해결하고 있으므로 받은 돈과 쓴 돈의 기록은 별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아 점검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부터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까지 용돈을 주기로 한 약속은 지켜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사실 내가 용돈을 주기 시작한 것은 도토리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였다. 1학년이 되면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용돈기입장에 내용을 적어 와야 계속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입학식이 있던 해 3월 첫날에 커다란 금전출납부 장부와 천 원짜리 새 지폐 한 장을 도토리에게 주면서 맨 앞 칸에 날짜를 적고, 다음 칸에는 받은 돈의 액수, 그다음 칸에는 쓴 돈의 액수, 나머지 칸에는 남은 돈의 액수를 써넣으라고 일러두었다. 엄마에게 저금을 하더라도 장부에 기입하고 저금하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이미 손가락을 사용해 셈을 할 수 있었으므로 나에게 받은 것과 함께 누구에겐가 받은 용돈, 그리고 사용한 액수를 모두 용돈기입장에 적어 놓을 수 있었다.
용돈의 액수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1,000원을 올리기로 했다. 1학년일 때 1,000원, 2학년이 되면 2,000원, 학년수와 같이 용돈의 액수가 올라가다 보면 6학년 되었을 때 6,0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약속 당시 유치원 졸업생이었던 아이에게는 6천이라는 숫자가 무지하게 크게 느껴졌는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너무너무 좋아했었다. 빨리빨리 학년이 올라가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과연 중학생이 되어서도 7만이 아닌 7천의 숫자를 좋아하며 만족하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올려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도토리는 돈을 가지고 나가서 직접 무엇인가를 사 가지고 들어오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다. 도토리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직접 거래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세뱃돈이나 친척 어른들이 주신 용돈은 보통 엄마들이 관리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을 것이다. 많이 받으면 좋아하지만 받는 그 순간에 좋은 것이지 꼭 필요해서 좋아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용돈의 행방을 기입한다는 것은 돈의 가치뿐 아니라, 수 개념과 시간 개념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용돈기입장을 쓰도록 함으로써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주고받고, 서로 교환하는 법칙을 배우게 하고, 경제활동을 직접 체험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 부모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어지는 돈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줄 수도 있다. 또한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버리면 얼마 동안은 살 수 없다는 것을 훈련받게 한다면 미래를 생각해서 참는 습관과 능력을 길러줄 수도 있다. 이렇게 일정한 규모 안에서 충분하게 활용하는 능력은 비단 경제관념뿐 아니라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활용되는 유용한 테크닉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돈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어떻게 쓰이는지, 어디에 있는지, 돈이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 수는 없는 나이다. 돈이란 인간의 노동에 의한 대가며,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진리를 언제쯤 깨닫게 될까. 어린 도토리에게 용돈기입장에 자세하게 기록하라는 요구는 돈을 사용하는 지혜를 터득하기 바라는 마음, 그리고 올바른 경제의 개념을 알려주고 싶은 어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성급한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돈의 크기나 용도나 의미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의도가 전달되기에는 너무 이른 시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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