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에게서 받은 선물들
이번 생일에 도토리에게서 받은 선물은 노란색 클리어파일이다. 맨 앞장의 포켓 속에는 세 개의 수학 문제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물론 색종이로 만든 축하카드도 함께 들어 있었다. 카드에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도 쓰여 있었지만 심심할 때 문제를 풀어서 자기에게 검사를 받으라는 조건도 쓰여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심심할 때 풀어보라는 수학 문제는 자신에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검사까지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닐까. 과목 중에서 수학에 제일 자신이 있었던 나였는데 이젠 초등학교 5학년의 수학 문제도 만만치 않다.
나도 도토리에게 선물을 주곤 했다. 그중 무엇이 그녀의 기억에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화책, 예쁜 노트, 작은 책꽂이, 드럼채 등 그녀가 지정하는 것들을 사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도토리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색종이 반지, 색종이 시계, 색종이 바구니, 색종이 팔찌, 색종이 하트 책갈피 등은 도토리가 색종이를 가지고 놀 무렵에 나에게 만들어 준 특별한 선물들이다. 주로 분홍색, 빨간색, 주홍색, 노란색 등 그녀가 좋아하는 색종이로 만들어졌다.
꽃반지, 꽃팔찌, 꽃목걸이도 기억난다. 여섯 살 무렵의 도토리가 어린이 집 야외활동 시간에 만든 것들이다. 토끼풀의 꽃을 두 개로 연결해서 팔찌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어서 집으로 가지고 와 내 팔에 끼워 주고 목에 걸어 준 선물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버린 꽃 제품들은 버려졌지만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조개껍질들도 있다. 서해안에 놀러 갔다가 조개껍질 다섯 개를 주어 와서 나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우리 식구 다섯처럼 조개껍질 식구 다섯이란다. 도토리, 도토리의 엄마와 아빠, 도토리의 할머니, 그리고 도토리의 고모인 나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작은 조개껍질은 아직도 내 책꽂이 위에 잘 진열되어 있다.
이 밖에도 그림이 있는 편지, 신문지로 만든 옷, 각종 예쁜 스티커, 신기하게 구부러지는 연필, 사랑해라고 쓴 종이비행기, 모형 사과가 달린 색연필, 조그만 형광펜, 여러 모양의 지우개, 어디에선가 선물 받은 과자들과 초콜릿, 불량식품이라고 여겨지는 형형색색 먹거리들, 아이들에게나 필요한 작은 수첩들, 찰흙으로 만든 동물들, 토끼 두 마리가 사이좋게 서 있는 연필꽂이, 작은 액자, 촉감 좋은 인형들, 나를 위해 식당에서 가져온 고구마 한 조각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모두가 다 감동을 주었던 선물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그녀가 글씨를 배우기 시작한 가을에 나에게 준 노란 은행잎 편지다. 그 작은 은행잎 위에는 연필로 ‘고모... 사랑해...’라고 쓰여 있었다.
예전엔 어른인 고모에게 양보하면서 선물이라고 하며 기꺼이 주던 시절도 있었다. 자기가 가지고 싶은 물건이거나 아끼는 물건이더라도 내가 달라고 하면 잠시 망설이다가 주곤 했다. 이제 12살이 된 도토리에게서 그런 종류의 선물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난 아직도 기대한다. 나를 보고 그냥 해맑게 웃어주는 웃음, 그들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재미있는 언어와 몸짓들로 함께 나누는 대화, 우울한 기분에 잠긴 나를 위해 연주해 주는 피아노 소곡들, 그리고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 그녀에게서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등등의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또 안다. 그 모든 것들이 아니더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도토리의 존재 자체가 선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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