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어느 날 도토리가 내 방에 들어와 말없이 침대 위에 엎드렸다. 기분을 언짢게 하는 일이 있었나 보다. 나는 무관심한 척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잠시 후 뒤척이는 소리가 나서 돌아봤더니 보라는 듯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한참 동안 뒹굴뒹굴하더니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핸드폰 문자 키 누르는 기계음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는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웃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키득키득... 문자놀이도 무척 재밌는데..." 친구들하고 주고받은 문자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한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혼자 노는 문화가 우리 때와는 비교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완전히 다르다고나 할까.
한동안 조용히 핸드폰을 가지고 놀던 도토리가 갑자기 나에게 묻는다.
“고모, 재희 오빠도 친척이지?”
“응, 친척이지... 작은 고모의 아들이니까...”
아마도 전화번호들을 그룹으로 묶고 있는가 보다. 난 그녀가 몇 개의 그룹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다.
“몇 그룹인데...?”
“다섯 개”
“뭐~뭐야...?”
“단짝 친구... 친구... 선생님들... 가족... 친척... 이렇게 다섯 개!”
나는 또 궁금해서 물었다. 친척 그룹에 속할까, 가족 그룹에 속할까, 아니 단짝 친구 그룹에 속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어디에 속해?”
“고모는 가족이지!...”
그녀의 대답은 아주 당연한 사실을 왜 묻고 있느냐는 투였다. 내가 다시 말했다.
“고모는 친척 그룹에 넣어야 하는 거야... 지금은 너랑 같이 살고 있으니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도 알아... 고몬 그러니까 땡잡은 거지...”
“뭐가...?” 하고 내가 깜짝 놀라 물으니 대답은 안 하고 핸드폰 키만 눌러댄다.
“..............”
나는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다.
“고모가 딴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땐 가족이 아니고 친척이야...”
“아니야!... 절대 안 그래!...”라고 말하는 그녀의 어조는 아주 단호했다.
“뭐가 안 그래?”
“고모는 나의 영원한 가족이야...!”
이제는 내가 할 말이 없어졌다.
“...............”
나는 답변을 못하고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척하며 생각했다. 같이 사니까 가족이 되는구나... 가족이란 같이 사는 거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몇 년 전에 읽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혈연이나 제도의 가족 개념이라기보다... 사람이 모여 함께 살 수 있게 되는 개념의 가족... 이제 막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도토리의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는 가족의 범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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