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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음에서 피는 꽃] 옆서 위에 피어있는 카네이션

truehjh 2006. 5. 11. 10:17

엽서 위에 피어있는 카네이션

 

꼬마 때부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제자가 군에 갔다. 대한민국의 장성한 아들들이면 대부분 거쳐 가게 되는 곳이 군대이다. 그가 그 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해 5월 그러니까 스승의 날이 될 무렵인가 보다. 나는 카네이션 한 송이가 그려져 있는 엽서를 받았다.

한선생님께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드리고 싶었는데...

마음으로

마음으로

꽃 한 송이 드립니다.

 

발신인은 군인이 된 그 제자였고, 엽서 위에는 위와 같은 글과 함께 붉은색 카네이션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다. 생화를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림꽃 한 송이를 보내주었던 청년 군인은 지금 한 가정의 가장이며 한 회사의 책임자가 되어 있다. 이제는 늙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서 서로에게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엽서 위에 그려져 있는 카네이션 꽃 한 송이는 언제나 새롭게 한 다발 그리고 또 한 아름의 꽃으로 변하여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카네이션은 지중해 연안에 자생하던 패랭이과(석죽과)의 다년초로 기원전 3백년 경 다이안서스(Dianthus)라는 이름으로 재배되었다고 하여 지금도 이것이 학명으로 불리고 있다. 또 다른 이름은 엔젤이라고 한다. 엔젤은 네덜란드 이름 ‘Anjelier'에서 유래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이 이름은 사용되지 않고 카네이션으로 불리고 있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또는 혼합색의 꽃잎 끝은 정교한 톱날 같은 섬세함으로 빚어져 있으며, 여러 가지 색으로 섞여 있는 꽃잎 색의 조화 역시 우아하고 포근한 느낌을 전해 준다.

 

또한 카네이션은 세계 3대 절화 중의 하나로 어버이와 스승의 날 감사와 존경을 표시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승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와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삶의 스승이 있다. 어떤 사람은 성인을, 어떤 사람은 책을, 어떤 사람은 부모님을, 혹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을 스승으로 삼고 살아간다. 인생이라는 절대 고독의 항해에서 그나마 등대삼아 살아가고픈 스승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되어지면, 그래서 삶이 고달프고 외롭다고 느껴지면, 배움의 눈을 열고 겸손한 시선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허리를 굽히는 노력 즉 낮아짐이 없이는 길가에 나지막하게 피어있는 눈부신 작은 꽃들을 발견할 수 없는 것처럼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곁에 있는 스승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허리를 굽히는 작업은 나의 부족한 면, 모자라는 부분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며, 겸손해진다는 것은 자신 안에서 내면의 움직임을 응시하며 나의 부족한 면, 모자라는 면을 인정하고 채우려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아에 대한 성찰 없이는 낮아지고 넓어지는 시선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로 인해 어느 순간 반짝이는 빛처럼 나타나는 스승을 만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인 융에 의하면 인간은 삶의 전반부에서는 자신의 외부세계를 다스리지만 삶의 후반부에서는 개인적인 한계와 질병이나 사망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점점 더 내면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내면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삶의 작은 스승을 만나보려고 한 번 노력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승을 만나려는 마음이 간절해지면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싶은 스승을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있어도 그 중에 스승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누구를 만나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이가 스승임을 알아야 하며 또한 모두에게 스승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스승의 날을 맞을 때마다 엽서 위에 피어있는 카네이션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마음의 항해에서 참된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신의 축복이며, 누군가에게 작은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신의 축복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 삶의 스승은 누구인가? 나는 카네이션 한 송이를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은 스승을 가졌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한 송이 카네이션을 받아도 될 만한 사람이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