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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음에서 피는 꽃]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truehjh 2006. 6. 8. 19:14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뱀의 꾀임에 빠져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이브의 눈물이 지상에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쥬피터가 갓 난 헤라클레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그의 아내 쥬노의 젖을 먹게 했는데 성급히 젖을 먹다 흘린 쥬노의 젖이 땅에 떨어져 뭉쳐지며 그것이 흰 백합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백합꽃의 유래가 어떠하든 간에 이 글의 제목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라는 성서의 한 구절에서 인용한 문구이다.

 

신화나 성서에 자주 나오는 백합은 종류가 워낙 많고 서식지도 다양하지만 주로 온대와 열대의 산지에서 많이 자란다. 키가 1m까지 자라고, 잎은 잎자루 없이 줄기를 감싸며 어긋나게 나온다. 꽃은 5~6월에 줄기 끝에서 2~3송이씩 옆 또는 아래쪽을 향해 벌어져 피고, 보통 향기를 지니지만 품종에 따라 향기가 없는 것도 있다. 백합은 23개씩 나오는 새 알뿌리를 떼어 심어 포기나누기로 번식시키는데, 내가 어렸을 적에는 집 안의 어른들이 이웃에게서 그 알뿌리를 몇 개씩 얻어다가 마당에 심어 키우곤 하셨다.

 

그러나 성서는 이렇게 마당에 심어서 물 주고 사랑 주며 정성들여 키워서 피어나는 백합꽃이 아닌,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심지도 아니하고, 누군가가 수고도 아니 하는 곳에서 피어나는 백합화를 보라고 선포한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들에 핀 달맞이꽃을 보라..., 들에 핀 은방울꽃을 보라..., 들에 핀 패랭이꽃을 보라..., 들에 핀 개발나물꽃을 보라..., 저 들에 피어있는 한 떨기 이름 없는 꽃을 보아라...’ 이 얼마나 경이감 넘치게 하는 구절인가. 명령하는 것 같은 이 지시어 보라는 어떻게 보면 은근한 권유나 선언 또는 선포로 들리기까지 한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건물만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성경구절은 조금 생소하겠지만, 그 메시지의 시사점이 나에게 주는 용기는 참으로 크다. 이 단순하면서 엄숙한 선언은 내가 주변 환경을 탓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보게 한다. 나는 내 삶의 어떤 한 순간에도 꽃을 피워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삶의 꽃을 피우도록 도와주지 않은 누군가가, 사회가, 시대가, 그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가진 조건들이 너무 열악해서 화려한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는 불만이 생길 때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키워주고 자라게 하고 성공하게 하고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 주었더라면 나는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웠을 것이라는 어줍지 않은 핑계가 생길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돌이켜 세우는 성경구절이다.

 

가끔 시골길을 지나다가 혹은 넓은 도로를 지나다가 길옆의 야산이나 언덕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탄성을 지르곤 한다. 이러한 놀라움은 보아주는 이가 없어도 홀로 피고 지는 생명들에 대해서 경탄하면서 꽃이 그렇게 피어있다는 것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네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다.

 

고통의 가시밭에서도 백합화같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삶,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적한 동산에서 스스로를 세우며 향기를 발하고 있는 삶, 자랑하거나 오만하지 않게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삶, 그리고 그 모습이 아름답다거나 향기롭다거나 조차 무관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성실한 삶, 이러한 삶은 들 한 가운데 혹은 길옆에 피어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누구나의 삶이 모두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지금 저 들에 피어있는 한 송이 이름 없는 작은 꽃이 되는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면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저 들판에 홀로 용감하게 서 있는 한 인간을 보아라... 아무도 돌보는 이 없어도 자신의 꽃을 피워 향기를 발하고 살아가는 한 인간을 보아라... 그 어떤 만물보다 아름다운 한 인간을 보아라...’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아니 누군가가 나를 보아주지 않으면 또 어떠하랴. 나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