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향기는 바람을 타고 ...
봄의 꽃소식에 들떠 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이 느껴지는 날들이 연속된다. 이렇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사이에도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지는데 계절에 따라 변화되는 꽃소식이 오늘 따라 반갑게 느껴진다.
꽃을 통해서 계절을 조금씩 이해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가 피고 지면서 연초록의 잎들이 세상을 향해 종알거리며 돋아나고, 강렬한 원색을 지닌 철쭉꽃이 만개하고, 이름 모를 수많은 들풀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꽃을 피우고 있더니, 이제는 라일락꽃, 아카시아꽃, 밤꽃이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향기를 내 뿜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아카시아나 라일락 꽃향기에 얽힌 추억 하나쯤 남겨놓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꽃향기에 대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의 향기가 더하여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꽃향기의 진정한 가치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추억속의 사건이 재해석 되기라도 하면 꽃향기의 가치도 재해석 되곤 한다. 행복했던 꽃향기 추억이 갑자기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행복도 보기에 따라 불운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긴 안목으로 보면 행운과 비운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얼마 전의 일이다. 차를 타고 가는데 어디선가로 부터 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어두운 밤이었기에 형태보다 먼저 향기가 나에게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아카시아는 멀리까지 퍼지는 향기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알리곤 한다.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면서 골목을 지나 향기를 따라 갔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곳에서 까만 밤에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아카시아 숲을 발견했다. 그 앞에서 난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로 돌아가 보았다.
그때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좋은 줄 몰랐다. 단지 꽃잎의 달콤한 맛이 좋아 꽃을 따먹곤 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져 있다. 이제는 맛보다 향기가 더 좋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아카시아는 똑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아카시아에 대한 나의 취향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라일락 향기에 취해 있던 시절도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라일락 꽃향기가 너무 좋았다. 그것은 대학시절까지 이어졌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다시 아카시아향을 즐기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취향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우리가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가치나 덕목 또한 시대를 따라 변화한다.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듯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에 적당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난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추구하던 가치가 있었고, 우리의 세대가 추구하던 가치가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소중한 가치들이 새로운 가치들에 의해서 물거품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가치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지녔던 가치에 대하여 포기하지 못한다. 포기하고 나면 자신의 존재기반이 없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없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세상이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버리게 된다.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종말로 치닫고 있다고 느끼며 절망한다. 그리고 그 절망으로 인해 더더욱 행복한 세상을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
계절에 따라 새로운 꽃들이 피고 지지만 피고 지는 모든 꽃들은 저마다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듯이, 변화되는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즉 변화되면 안 되는 기본적인 본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이러한 마음은 어떠한 이유로라도 변화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않고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나와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리고 내가 만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가까운 이웃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사랑의 방식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겠고... 가장 가까운 이웃의 범주도 각자에게 다르게 존재하겠지만...
'e-Book&CHARMBooks > e<마음에서피는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e[마음에서 피는 꽃] 자스민꽃차 한 모금 (0) | 2006.06.18 |
---|---|
e[마음에서 피는 꽃]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0) | 2006.06.08 |
e[마음에서 피는 꽃] 옆서 위에 피어있는 카네이션 (0) | 2006.05.11 |
e[마음에서 피는 꽃] 잔인한 4월의 하얀 목련 (0) | 2006.04.12 |
e[마음에서 피는 꽃] 또 다른 행복을 주는 서양란의 화려함과 다양함 (0) | 2006.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