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장년시대(2005~2014)

몽골의료선교 여행

truehjh 2007. 8. 11. 15:07

 

자유의지와 장애해방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성의 모순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여러 분야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도 자주 했다. 장애인 치고는 여행을 참 많이 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꿈을 이루거나 소명을 찾는 행복과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젊은 날의 방황을 마무리하고 늦었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을 무렵, 내가 속해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진행하는 의료선교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의료선교팀에서는 년초부터 몽골의료선교 이야기가 시작되더니, 이번 여름에 몽골로 의료선교를 떠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사업차 몽골을 몇 번 다녀온 아우의 다양한 정보접촉으로 인해, 몽골의료선교 준비에 박차가 가했다. 몽골을 향한 계획 속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이웃과 나누려는 숭고한 정신이 담겨있지만, 얼마 전 탈레반 납치사건도 있고 해서 마음의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히, 차분히, 꼼꼼히, 간절히, 잘 해내야만 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내가 과연 참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의 약함으로 인해 팀원들에게 불편함을 주게 될까 봐 걱정되었고, 몽골의 편의시설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위해 활용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그저 감사하게 여기며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선교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므로 순수한 휴머니즘적 봉사의 태도로만 접근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라고 본다. 특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우리의 시도는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작은 행동과 미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나야만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드디어 선교여행은 시작되었고,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에 내렸다. 의료장비와 약품들을 가지고 비포장 도로를 구불구불 지나 판자촌 같은 모습의 집들이 다정하게 모여 있는 지역으로 갔다.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 나무판이 울타리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누어준 사탕을 물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너무나 작아졌다. 푸른 초원의 순결한 대지 위에서 자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욕심 없는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먼 이국에서 우리나라로 온 선교사들의 눈에도 우리가 이러한 모습으로 비추어졌을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의료팀의 의사들은 내과와 피부과 전문의였다. 유능한 통역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타 영역의 분들이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여서 진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진료에 임하는 우리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고지혈증 관련 환자들과 피부질환이 많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하고 있었고, 관절염, 치통, 중이염, 빈혈, 소화불량, 상처를 잘 처치하지 못해서 생긴 염증, 종기, 알러지, 두통, 고혈압, 당뇨 등 등,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과 상처들이 많았다. 나는 약국의 업무를 도와주시는 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별 어려움이 없이 투약할 수 있었다. 단지, 전기상황이 원활하지 않아 사용하는 약포장기에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여 애를 먹었다.

 

계획했던 3일간의 진료를 모두 마치고 우리 팀원 모두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소중한 휴가를 의료선교에 할애한 팀원들을 위해 다음날 하루의 일정은 여행이었다.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맑은 강물은 너무도 투명해서 물속 돌들의 웃음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듯한데, 우리를 태우려고 말들이 그 강을 건너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경험을 했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과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전통가옥 겔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내 마음이 가끔 가난해질 때면, 평화로운 몽골의 초원과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팀은 계속해서 지역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와 해외의료선교를 실천할 것이다.

 

나는 이번의 의료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선교여행을 실행하면서,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생각을 발견했다. 내가 가는 길, 나에게 주신 소명을 정형화하려 하거나, 고착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그 소명을 찾아 헤매기만 했던 지난 세월이 아쉽긴 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헤맬 수도 있다는 불안이 엄습해 오긴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는지 그저 겸손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시로 주시는 깨우침을 얻으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감사의 삶으로 옮겨야 하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