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Oh, Happy Days!

호적등본열람 단상

truehjh 2007. 5. 25. 12:08
 

얼마 전에 사무실 근처의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 한통을 뗬다.

인감증명서나 주민등록초본 또는 주민등록등본 정도는 가끔 띠어보곤 했지만

호적등본까지 준비해야 하는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간만에 마주한 호적등본이라는 서류였다.

그런데 내가 받아본 호적등본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같이 살고 있지도 않은 오빠가 호주로 등장하고,

묶여져 있는 서류 세장 중에 맨 뒷장 그리고 맨 끝 부분에 내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오빠의 아이들이 있고 그 다음에 나의 이름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반백년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존재하지 못하고

어린 조카들 밑에 끼어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서글펐다.

내 인생은 그냥 남의 인생에 곁다리로 붙어 있는 듯한 느낌, 아니 그런 곁다리 인생 같은...


호주제가 폐지된 이 마당에 서류상의 순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랴마는

그리고 종이 위에 있는 위아래의 순서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마는

왠지 나의 존재가 저 멀리 밀려나 있는 느낌이어서 씁쓸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나 자신의 자세는 어떠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내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지면서 살고 있는지를...

그리고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또한 내 삶을 전인적으로 책임지기 위해서

그 많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하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체적이지 않은 편리한 방법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갑자기 내 삶의 현장을 되새겨 보니...

주체적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호적등본을 보는 순간 느낀 감정마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솔솔...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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