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Basecamp/Review

강의 - 데리다와의 데이트

truehjh 2016. 12. 13. 21:34


페북에 올라오는 많은 글 중에는 꼼꼼히 읽어보고 싶은 글들이 가끔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강남순 교수의 글들이다. 사진으로는 냉정한 학자, 특히 과격한 여성학자 같은 느낌인데 글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그의 글은 논리적이지만 인간을 보는 따스함이 스며있다. 그래서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리고 어제는 사진과 글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남을 통한 ‘읽기’를 하고 싶어서 당산역 근처의 새물결아카데미 강의실로 갔다.

 

얼마 전 ‘데리다와의 데이트’라는 포스팅을 보고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저녁 시간에 당산역 주변이라니... 파주에서 거기까지 가려면... 아니 가는 것은 쉬운데... 돌아오는 길이 만만치 않겠지...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그 전날 포기를 했다. ‘왜?’라는 질문이 계속 나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왜? 인문학 강의를 듣겠다고 혹하고 있을까... 왜... 요즘 나의 머리는 텅 빈...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진공상태였다. 결국은 빈 머리를 채우려고? 아니다. 빈 마음을 채우려고? 그것이어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지 말자고 결정을 했다. 이 답답한 시국에 철학자와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다른 돌파구를 모색해 보려던 꼼수는 잊혀졌다. 그런데 어제 수영장으로 가는 길에 후배에게서 같이 가자는 전화를 받았다. 고민은 다시 반복되었고, 결국은 가방을 들고 나왔다.

 

물론 데리다라는 철학자를 알지도 못했고 그에게 관심도 없었다. 단지 그를 해석하고 있는 강남순 교수의 ‘따듯한 시선의 글들’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어제 강의에서 얻어들은 개념들... 해체, 환대, 용서, 선물, 비결정성, 더블 바인드(필요하지만 불가능하다) 등의 개념들을 이해하기는 불가했지만 그 중에 비결정성 그것 하나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다. 즉 내가 내린 어제까지의 결정은 아무런 구속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한 통의 전화에 의해 강남순 교수를 만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만남이라는 것이 일방적일 수밖에 없지만 강사의 목소리와 표정과 몸짓을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며 강의를 듣는 형식의 만남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열린 마음으로... 규정된 것들을 해체하고... 해체 후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을 것들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오늘 하루하루를...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는... 나에게 어떤 소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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