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_ 예순네 번째 생일

truehjh 2019. 3. 15. 19:49


오늘 예순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아니 어쩌면 독립이라는 걸 하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이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앞으로도 쭈욱 이런 감정일 테니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엄마가 살아계실 때까지는 내생일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생일에 축하를 받는 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 내가 축하를 받게 되니 책임감과 함께 무게가 다른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나이가 들면 자녀들의 축하로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 생일이라는 기념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형제나 친구들의 축하도 고맙지만 조카들의 축하가 더 마음을 감동시키니 말이다


아침에는 컴퓨터와 핸드폰 화면이 조용하고 깔끔한 상태를 유지해 주어서 차분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다행이다. 자주 사용하는 SNS에서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축하하라는 메시지가 뜨곤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축하를 종용하는 듯한 문자가 뜨면 약간 부담스러운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도 그럴 것 같아서, 모든 종류의 SNS에 생일정보를 비공개로 전환해 놓았더니, 작년과 달리 올해는 성공한 것 같다. 진정으로 기억하면서 축하해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축하를 받으니 마음이 충족되어 그런대로 기분은 괜찮았다.


그런데 이 저녁이 문제다혼자 보내는 생일의 저녁시간이 생경하다. 늘 식구들과 함께 지내곤 했는데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쓸쓸함이 가중되고 있다. 더구나 명진엠엔에치 식구들은 20주년 창립기념으로 대만 연수를 떠난 상태라 집 뒤에 있는 사무실과 공장이 텅 비어있어서 무섭기도 하다. 수영장 다녀와 주차하는데 썰렁함이 느껴졌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주차장 공터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공허하기까지 했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늦게 퇴근하는 직원들의 어수선함이 느껴지곤 했는데, 한줄기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평소와는 달리 완전 적막함이 내려앉아 있다.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아 괜스레 눈물이 나려한다.


조금 전에 이른 저녁을 먹긴 먹었는데 마음에 차지 않는다. 미역국도 끓여먹지 않았다. 케익도 자르지 않았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했던 ritual한 규칙성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그래도 프리지어 꽃향기 덕분에 안정과 평안을 느낀다. 스위스에서 보내온 향기다 


 

 


 

어제는 오빠를 비롯해서 형제들이 다 모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가 꼬박꼬박 생일을 챙겨주시니 기분도 좋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함께 모인 친지들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옛날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섞어서 정담을 나눴다. 축하받는 것이 좋다기보다 이런 날을 계기로 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늙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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