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바람소리] 예순다섯 살의 그대에게

truehjh 2020. 3. 15. 18:12

예순다섯 살의 그대에게...

 

예순다섯 살의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쉰다섯 살의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0년 후에도 글을 쓸 수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쓰겠다라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아름다운 미소 짓고 살아가라는 염원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동감 넘치는 미소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힘없이 웃는 모습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러나 잘 살아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난 10년간 그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많은 일을 남겨놓은 것이 사실입니다. 노화되어 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힘겹게 보낸 갱년기의 기록, 소리들의 일을 하며 기록한 꽃관련 에세이의 기록, 도토리와 함께한 성장일기이며 다정한 삶의 기록, 엄마를 보내며 분가를 통한 완전 독립을 꿈꾸는 기록, 시니어로 진입하는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한 기록 등을 펴내며 이웃과 공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보잘 것 없는 일들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용감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대의 글쓰기는 예술 행위라기보다 배설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취감이나 창조의 기쁨보다는 배설의 후련함을 강조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한 그대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그런 것이 삶이려니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그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분가를 통한 진정한 독립도 이루었습니다. 그동안 홀로의 삶에 적응하며 분투하는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제도적 노인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저항하지 않는 그대의 태도를 보니 안심이 됩니다. 몸이 말하고 마음이 말한다는 그대의 푸념이 맞습니다. 노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아니 저절로 인정된다고, 받아들여진다고 말하고 있는 그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여기며 무념의 상태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길을 잘 가고 있습니다. 아니 당신만의 길로 잘 들어섰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만족하기 바랍니다. 아쉬움이 남아있다면 젊었을 때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지만 그것 역시 커다란 방해 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눈이 저 먼 곳에 머무르지 않고 목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순례자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상태에서는 괜찮은 것 아닐까요. 지금에 감사하면서 본향을 향해가는 길 위를 걷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진행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으려는 욕심이 아니고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용감한 발걸음입니다. 도착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것이 결국은 종착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에게 드러나는, 사랑받는, 신뢰받는, 그 모든 모습이 결국은 자신과 대면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자신이 보는 자아, 그 진정한 자아를 만나기 위해 길가는 나그네일 뿐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100세를 향해가는 어느 철학자는 인생을 다시 살라면 65세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는데, 충분히 공감됩니다. 자유롭게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는 나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년이 지나 75세가 된 그대에게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65세 이후야말로 진정한 그대 자신으로 살았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 순간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일흔다섯의 나이에 다시 그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그때 다시 감격의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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