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한지붕아래서

또 하나의 도토리...

truehjh 2008. 5. 31. 16:48

 

  

 '기차를 세워주세요'

 

당신이 타고 있는 기차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한지혜(예술학부·연극영화 4) 양은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단편영화 ‘기차를 세워주세요’에서 삶을 기차에 빗대 표현했다.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밀려난 젊은이들은 언제 기차를 탔는지도, 어디서 내려야할지도 알 수 없다. 한 양의 ‘기차를 세워주세요’는 이달 초 열린 제 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의 선택 : 비평가 주간’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단편의 선택 : 비평가 주간’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영화를 비평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했으며 지난해부터 경쟁부문으로 진행됐다. 올해에는 총 700여 편의 단편영화가 출품됐으며 그 중 19편의 영화가 본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일부러 스텝들을 웃겨 가며 촬영장에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아낌없이 내뱉는 감독인 한 양은 촬영장 분위기를 위해서 ‘스텝들의 밥을 굶기지 않고 잘 챙겨줘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열정과 배려가 전주국제영화제 뿐만 아니라 제 1회 젊은 영화제에서도, 한양 영화제에서도 한 양의 영화가 인정받는 원동력이 아닐까? 위클리한양은 한 양을 만나 영화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은 어떤 영화인가?

23분의 러닝타임동안 ‘악몽(惡夢)같은 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에 기차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단 한 번뿐이며 이 영화에서 기차는 곧 삶이란 추상적인 가치를 말한다. ‘공포의 헬멧’으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빅토르 펠레빈이 쓴 ‘노란 화살’이란 책에서 러시아란 나라를 기차에 비유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 ‘기차를 세워주세요’의 주인공인 4명의 다(多)국적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삶의 무게에 짓눌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어둡지 않다. 시종일관 주인공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 안에 웃음과 극복 의지가 깃들어 있다.

 

학생 신분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번 작품에 총 400만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필름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그 비용만 해도 150만원이 들었다. 태원 엔터테인먼트에서 200만원의 제작지원금을 받았지만 남은 비용은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해결했다. 10개월 남짓 작품을 구상했으며 본격적인 기획은 2개월이 걸렸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7번의 촬영으로 모든 장면을 찍었으며 편집은 꼬박 3개월이 걸렸다. 학교를 다니며 돈을 벌고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잠 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지만 꾹꾹 참으며 이겨냈다.

 

작품을 구상할 때 영감을 얻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다.

여행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삶의 경험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연출자의 경험은 영화 속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간혹 내 영화가 외국인이 만든 작품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이는 다양한 삶을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책을 많이 보려고 노력하며 특히 고전 소설에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사실은 영화를 포함한 모든 매체가 스승이다.

 

언제부터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나?

중학교 2학년 때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를 감명 깊게 보고 나서부터 줄곧 영화감독을 꿈꿨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는 잠시 영화 제작이 싫기도 했다. 이유 없이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찍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프랑스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부모님들은 영화보다는 기업에 취직하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제는 가장 든든한 지원자로서 힘이 돼준다.

 

영화감독이 갖춰야 할 것과 본인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인문학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크게 보면 감독 또한 작가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화는 말이나 글보다는 영상으로 승부하는 매체이므로 감독은 그림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미학적이고 심미적인 장면 연출이며 미장센(mise-en-scene)도 포함된다. 사실 부족한 점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스스로 보기에도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면이 없지 않다.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지?

‘주노’, ‘미스 리틀 선샤인’과 같은 영화처럼 주류 영화 흐름에 편승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또한 ‘빵과 장미’의 켄 로치(Kenneth Loach), ‘거북이도 난다’의 바흐만 고바디(Bahman Ghobadi)처럼 사회참여적이고 독립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러한 영화를 보면 ‘사실보다 더 강력한 것은 픽션’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노인을 위한 바다는 없다’처럼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할 수 있는 장르 영화에도 꼭 한 번 도전하고 싶다.


글 : 김준연 학생기자 halloween@hanyang.ac.kr
사진 : 권순범 사진기자 pinull@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