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Drawing

그리다

truehjh 2010. 3. 3. 01:36

 

 

-‘그리다’는 ‘물건의 형상, 사상, 감정을 그림이나 글, 음악으로 나타내다’라는 의미의 말이기도 하지만,  ‘없어진 대상을 회상하거나 상상하다’ 또는 ‘사모하다,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다’라는 의미의 말이기도 하다  -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나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이면서

내 전 생애를 통하여 마음에 품고 있는 ‘진실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이다.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그 진한 그리움...


아홉 살 때의 일이던가...

남산에서 열리는 어린이 사생대회에 나갔다.

어른이 손 댄 그림이 분명하다고 심사에서 제외되었다고는 하지만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풍경의 그 그림은 오로지 나 혼자 그린 그림이었고...

얼마 후에는 우리 학교 교장실 옆 복도에 전시되어...

내가 전학을 간 이후에도 걸려 있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ㅋ.... ㅋ...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이것이 그림과 연결된 내 최초의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그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용세삼촌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 당시 혜화동 서울대 앞의 화방에서 구입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공급 받으면서

집에 혼자 가만히 앉아서 온갖 물체와 세상을 그려내는 것을 즐겼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놀이는

어쩌면 손으로 그리고, 쓰고, 만드는 것이 전부였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노동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던 대학생 야학교사인 삼촌이 돌아가셨다.

그림에 대한 나의 흥미는 다정하고 멋진 물리학도 삼촌의 모습과 함께 사라졌다.

막연한 그리움만 남기고...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다시 그림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 왔다.

약국 생활에서 잠시 잠시 틈을 내어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사십이 지나 또 다시 그림이 그리워져서

입시학원도 다녀보고, 문화센터도 다녀보고, 미술치료가 배우고 싶어 미국행도 시도해 보았지만

그리움을 품은 것만으로 끝이 나곤 했다.

 

언젠가는...

삼촌이 그려준 정물 스케치 한장을 가벼운 마음으로 꺼내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렸는데

그런데 이제... 그 그리움이 먼저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사십칠년 전 남산으로 향하던 그 가벼운 발걸음으로...

같이 놀자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게도...

'따로&같이 > Draw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묘(캔)  (0) 2010.03.23
소묘(항아리)  (0) 2010.03.19
소묘(약연)  (0) 2010.03.13
소묘(삼각뿔과 원기둥)  (0) 2010.03.12
소묘(사각기둥, 원기둥, 구)  (0) 2010.03.05